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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지역성 139 먼저 김원봉, 곽재기, 이성우 등 3인이 상해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제조 한 폭탄 3개를 임시정부 외무차장 장건상의 이름으로 된 소포우편으로 연 락기관인 원보상회 이병철에게 넘겨주고 이병철이 다시 화물로 위장하여 원동을 거쳐 밀양역 운송점에서 직접 찾아 밀양의 김병환에게 전달하여 부내면 내일동의 김병환의 상점에 숨겨두었다. 39) 이때 원동의 역전 운송 점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보아 경의, 경부철도를 따라 밀양역을 거쳐 밀양 시장에서 미곡상을 하던 김병환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조선과 대륙 침략을 위해 설치한 철도가 그들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고 격파할 폭탄의 운 송로로 조선인들에 의해 전유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병환과 그의 상점은 지난해 밀양 읍내 3·1운동의 구심이었고 또한 3·1운동의 중심지였던 밀양 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40) 밀양 시장은 바로 옆의 밀양공립보통학교와 함께 한 해 전 읍내 3·1운동이 거세게 일 어났던 중심이었다. 41) 이 때문에 원래 인근 영남루 옆에 있었던 밀양헌 병분견대가 3·1운동 이후 보통경찰관제의 전환과 함께 밀양경찰서로 전 환되자, 일제는 밀양 3·1운동의 중심이었던 밀양 시장 옆 밀양공립보통 학교를 밀양강 건너 삼문동으로 옮기게 하고 그 중심에 경찰서를 위치시 켰다. 42) 조선인들과 조선인 학생이 대거 몰려드는 시장과 학교를 분리시 키고 그 중심에서 조선인들을 철저하게 감시, 통제하기 위한 이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폭탄을 숨겨둔 것은 타격 대상을 명확하게 밀 양경찰서로 계획하고 있었던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때 경성을 거쳐 밀양에 들어온 곽재기는 밀양역 인근 가곡동 한봉근 의 집에서 신철휴, 윤세주와 폭탄이 밀양에 들어와 있는 사실을 알리고 신철휴와 윤세주가 적당한 시기에 협력 거사를 실행하기로 계획했다. 다 시 곽재기는 경성으로 가 국내에 들어와 있던 서상락, 김상윤에게 폭탄 39) 경성지방법원, 「곽재기 등 15인 판결문」(刑公 제254·255·256·257호), 1921. 40)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권재호 등 판결문」, 1919. 41)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지적원도」, 1912. 42) ꡔ밀양국민학교연혁사ꡕ ; 木谷佐一 , 「대일본직업별명세도 194호 조선남부」,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