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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8집 간접적으로 매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세단 활동의 일차적이 목표가 독 립사상이 투철한 유능한 청년을 모으고 연결하는 일이기에 이들은 방학 을 이용하여 여행을 핑계로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청년들과 연 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원봉과도 연결되었다. 최천택의 경우 양산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엄주태 와도 연결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로 경남 동부지역의 독립운동단체 또는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는 인사들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원봉이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상호 왕래가 잦았던 것은 김인태, 왕치덕, 오택의 무전여행 일화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36) 그러나 반년 도 지나기 전에 일제에 의해 조직은 발각되고 주동자들은 부산경찰서에 검거되어 모진 취조와 고문을 받았고, 결국 구세단을 해체한다는 조건하 에 방면되었다. 37) 이후 이들은 모두 요주의 인물로 감시와 사찰을 받게 되었으나 그런 가운데 각자의 생계활동 또는 정치활동 속에서도 독립운동에 대한 신념 을 잊지 않고 동지에 대한 신의를 간직한 채 생활했다. 이와 같이 어린 시절 같은 동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육체적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 며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서로의 신의를 몸소 체험했던 이들 인사들 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부산경찰서 투탄의거에서 다시 만나 나 름의 성과를 내었던 것이다. 3.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현장 의열단이 1920년대 전개한 의열투쟁을 살펴보면 다음 <표 6>과 같다. 36) 김삼근, ꡔ부산출신독립투사집ꡕ, 89·162쪽. 37) 김삼근, ꡔ부산출신독립투사집ꡕ, 88쪽 ; 권오현, ꡔ어둠을 밝힌 사람들ꡕ, 179~1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