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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8집 <그림 3> 1910년대 후반 부산항 및 부산진 지도 [비고] ‘부산부근’ 지도는 일본인 중심의 부산항과 조선인 중심의 초량, 부산진까지 포 함한 1918~1922년 사이의 모습을 그린 지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부산진 부 근을 확대한 것이 오른쪽 지도이다. 위 <그림 3>의 두 지도와 같이 부산의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된 부산궤 도주식회사의 경편철도가 부산진성으로부터 동래까지 부설되었을 때 부 산진 조선인 마을은 그 선로 안에 포함되지 못하고 배제되었다. 이후 이 경편철도는 전철로 바뀌게 되고 조선인 마을을 관통하게 되지만 전철역 은 조선인 마을의 중심이 아니라 그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경부선과 부산 동래 간 전철에 의해 조선인 마을이 두 구역으로 분리되는 공간 분할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27) 이 과정에서 전차에 의한 조선인 사망사고가 빈번히 발생했고 이에 따라 전차 전복 사건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28) 한편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말미암 아 부산항은 점차 일제의 ‘대륙 관문’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도시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그림 3>과 같이 매립과 매축이 지속적으로 추진 되었다. 부산진은 일제시기 내내 그 매립과 매축의 중심지였고 이를 통 해 새롭게 조성된 토지는 대대적인 물류 유통의 중심지 및 공업지구로 27) 전성현, 「일제시기 東萊線 건설과 근대 식민도시 부산의 형성」, ꡔ지방사와 지방문화ꡕ 12-2, 2009. 28) ꡔ釜山日報ꡕ 1916년 9월 15일 「永嘉臺下月下の慘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