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page

126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8집 교의 일본인 교사로부터 배우기를 거부한 김원봉, 윤세주 등도 자격은 없었지만 동화학교에서 전홍표 이하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교사들에 의 해 교육을 받으며 연무단이라는 비밀결사까지 만들어 독립의지를 불태 웠다. 21) 위의 <표 2>는 밀양공립보통학교와 동화학교에서 수학한 적이 있는 의열투쟁 관련자들이다. 특히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유대관계를 맺었던 인물 이외에 같은 지역이지만 밀양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한봉인, 한봉근 형제와 김상윤, 최수봉 등은 모두 밀양공립보통학교와 동화학교를 통해 유대관계를 형 성했다. 이상과 같이 의열단과 의열투쟁은 밀양이라고 하는 지역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연, 학연, 혈연관계를 토대로 하여 결성되었고 진행되었 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조선 민중에게 희 망을 준 의열단의 동지애와 희생정신은 지역에서 어린 시절부터 맺었던 유대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독립운동과 지역은 단순히 운동이 전개된 곳만이 아니라 운동이 전개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한 곳이기 때문에 향후 이 점에 유의하여 독립운동의 전개과 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부산지역 의열투쟁과 지역과의 관계 이제 의열투쟁과 부산지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주지하다 시피 부산지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의열투쟁은 박재혁에 의해 이루어 진 부산경찰서 투탄의거이다. 부산경찰서 투탄의거와 관련하여 투탄의거 당일 일제에 의해 수많은 지역 인사들이 검거되어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 지 관련 사실을 함구하여 이 사건은 박재혁의 단독 행동으로 일단락되었 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관련자 검거와 해방 이후 관련 인사들의 회고, 유고 등을 통해볼 때 박재혁 혼자만의 의거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 21) 김약산, 「석정동지약사」, ꡔ앞길ꡕ 제32기,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