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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지역성 125 <표 2> 밀양공립보통학교 및 동화학교 수학자명단 학교명 명단 밀양공립보통학교 (前 개창학교) 윤치형(1911), 김원봉(중퇴), 한봉근(1913), 윤세주(1914), 한봉인 (1914), 김소지(1914), 정동찬(1915), 최수봉, 김상윤(중퇴) 동화학교 황상규, 김대지, 김원봉, 윤세주, 최수봉, 김상윤, 김소지, 박소종, 정동찬 [출전] 밀양공립보통학교, ꡔ수료대장ꡕ, 1911 ; 육군성, 「밀양경찰서에서의 폭탄범인 검 거」(高警 제873호), ꡔ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3)ꡕ, 1921 ; 밀양초등학교백년청사편 찬위원회, ꡔ밀양백년청사, 1897~1997ꡕ, 1998 ; 강만길 편, ꡔ밀양의 독립운동사ꡕ, 밀양문화원, 2003. 같은 동향 출신이지만 신의를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의열투 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추동한 요인 중 학연도 뺄 수가 없다. 밀양지역에 는 근대교육의 일환으로 광무연간에 이미 적잖은 학교가 설립되어 있었 다. 그중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도 존재했고 그 러한 학교가 이들을 같은 목적하에 독립운동에 뛰어들도록 추동했다. 밀 양에도 근대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개화관료 출신인 손정현에 의해 개창 학교가, 성호 이익의 학풍을 잇고 있던 부북면 퇴로리의 항재 이익구와 성헌 이병희에 의해 화산의숙이, 그리고 광무연간에 전홍표에 의해 설립 된 동화학교가 있었다. 이 가운데 개창학교를 이은 밀양공립보통학교19) 와 민족의식이 강했던 동화학교는 의열투쟁 관련자들을 연결하는 중요 한 고리역할을 했다. 20) 특히 동화학교는 국권회복을 강조하는 민족교육 의 산실이었기에 민족의식이 남달리 투철했던 많은 의열투쟁 관련자들 을 모이게 했으며 이 속에서 그들은 독립의지를 키워나갔다. 동화학교 관련자들을 살펴보면, 의열단 설립에 막후 역할을 했던 황상규와 김대지 가 일찍이 동화학교를 나와 모교에서 후배를 양성했고 밀양공립보통학 19) 밀양공립보통학교는 1919년 3·1운동 당시 밀양 시장과 붙어 있어 밀양지역 3·1운 동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 때문에 1920년 즈음 장소를 옮겨 현재의 삼문동으로 이 전했고 그 자리에 밀양경찰서를 세워졌다(ꡔ밀양국민학교연혁사ꡕ ; 밀양초등학교백 년사편찬위원회, ꡔ밀양백년청사ꡕ, 1998). 20) 강만길 편, ꡔ밀양의 독립운동사ꡕ, 107~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