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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8집 행정 중심지이고 일제시기 행정구역상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에 해당한 다. 그리고 그 왼편은 밀양 읍성 서문 밖에 해당하며 행정구역상 부내면 내이동에 해당한다. 일제시기로 들어와 시가가 확장되면서 읍성은 허물 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점차 내이동 쪽으로 시가가 확장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제시기 내일동과 내이동은 모두 한 동네에 포함되었다. 이 구역 내에 의열단원의 본적지 또는 거주지가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그림 2>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의열단원들은 단순히 ‘동 향’일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애국 사상의 고취와 함께 “뜨거운 강변 모래 사장에서 풋볼을 찼고, 겨울 아침 상학전에는 등산과 냉수욕을” 하는 등 밀양강과 영남루를 오르내리며 함께 뛰어 놀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함께 <그림 2>에 표시(검은 점)되어 있는 동화학교와 밀양공립보통학교를 다 니며 한일강제병합이라는 암울한 시절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원봉의 유년 시절 회고에서도 확인되는 대목이다. 18) 한편 부내면에 거주하지 않은 밀양 출신 의열단원 들은 밀양강 너머 밀양역이 설치되어 시가가 확장되고 있던 가곡동을 비 롯하여 전통적인 농촌마을인 상북면 기산리와 마산리에 거주하고 있었 다. 즉 가곡동에는 이병철, 한봉근, 한봉인 등이 거주했으며, 상북면 기산 리와 마산리에는 김상윤, 최수봉이 인근에 거주했다. 이들 또한 철도 부 설지와 湯淺村 및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작지를 통해 내륙으로 진출한 일 본인들의 침략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어린 시절 밀양 군 부내면의 두 학교를 다니며 다른 의열단원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쌓 으며 지냈던 것으로 파악된다. 18) 김약산, 「석정동지약사」, ꡔ앞길ꡕ 제32기,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