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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지역성 123 <그림 2> 의열단 및 밀양지역 의열투쟁 관련인사의 거주지(밀양시내) 1. 전홍표(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28번지) 2. 황상규(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57번지) 3. 김대지(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847번지) 4. 윤치형(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77번지) 5. 김원봉(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01번지) 6. 윤세주(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880번지) 7. 김병환(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848번지) 8. 이장수(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882번지) 9. 정동찬(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991번지) 10. 고인덕(밀양군 부내면 내이동 1009번지) 11 . 강인수(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254번지) 12 . 박창수(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520번지) [출전] 경성지방법원, 「곽재기 등 15인 판결문」(刑公 제254·255·256·257호), 1921 ; 부산경찰서, 「부 산경찰서 폭탄 투하에 관한 건」(高警 제31192호), 1921 ; 고등법원, 「최경학 판결문」(刑公 제 134호), 1921 ; 경상북도경찰부, ꡔ고등경찰요사ꡕ, 1934, 234~236·238~239쪽 ; 경상남도경찰부, ꡔ고등경찰관계적록ꡕ, 1936, 31~33쪽 ; 대구지방법원, 「이종암 등 3인 판결문」(刑公 804호), 1926 ; 「이종암 등 9인 판결문」(豫 제54·6호), 1926 ;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내이동 지적원도」 1912 ; 기타 「제적등본」 등. [비고] 그 외 밀양역 인근에는 한봉근·한봉인(가곡동 557번지), 이병철(가곡동 367번지)이 거주했고 외곽에는 김상윤(기산리 1648번지), 최수봉(마산리 792번지)이 거주했다. 한편 같은 동향이라고 하는 지연 관계 또한 의열단 결성과 의열투쟁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위 <표 1>과 <그림 2>에서도 드러나듯이 의 열단 결성과 의열투쟁에 무려 14명의 밀양 출신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히 같은 동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며 이웃으로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은 친족 보다도 더 관계가 끈끈한 이웃사촌으로 지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의형 제와 같이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계는 표피 적이지만 이들의 거주지를 표시한 위 <그림 2>를 통해서도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위 <그림 2>에서 밀양군의 읍내인 부내면을 살펴보면 아 래 밀양강을 건너 오른편으로 영남루를 지나 곧바로 올라가면 동헌과 마 주치게 되고 다시 동헌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청도·대구 방면의 큰 도로 가 나 있다. 이 도로와 함께 가운데 지도를 가로 지르는 작은 도로가 나 있는데, 이 도로를 기점으로 오른쪽이 밀양 읍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