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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8집 이제 의열단과 의열투쟁의 인적 관계와 관련된 주관적 조건을 살펴보 도록 하자. 우선 의열단의 구성원 중 친인척관계가 적잖게 드러난다. 의 열단 성립에 막후 역할을 한 황상규와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은 고모부와 처조카 사이였다. 어릴 때부터 김원봉은 황상규를 따랐던 것으로 보이며 김원봉의 민족의식 고취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을 여러 정황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밀양 읍내 3·1운동을 주도했던 윤치형과 윤세주는 사 촌형제 사이로 밀양 3·1운동을 견인할 정도로 항일독립운동에 적극적이 었다. 15) 게다가 이른 시기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봉근과 한봉인은 친형제 사이였다. 16) 이 경우 지연관계 이전에 출생을 통한 혈 연관계로 보다 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여 그 연대감이란 말로 표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고했기 때문에 그들의 독립운동에 상호 중요한 역 할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관련자들과의 혈연관계는 차후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가깝지 않더라도 혈족 관계 속에 포함되는 인물 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른바 이웃사촌 또는 의형제처럼 지낸 인물들도 상당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 14) 밀양 읍내를 중심으로 일어난 3·1운동은 3월 13일 밀양 시장과 밀양공립보통학교 를 시작으로 4월 2일까지 5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부산지방법원 밀양 지청, 「권재호 등 판결문」, 1919 ; 경상남도경찰부, ꡔ고등경찰관계적록ꡕ, 1936, 12~13쪽). 15)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권재호 등 판결문」, 1919. 16) 「한봉근 제적등본」. 17) 김원봉과 윤세주도 먼 인척관계로 보이는데 김원봉의 부친 김주익의 조모가 윤씨였 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이원규, ꡔ약산 김원봉ꡕ, 실천문학사, 2005,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