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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 퉁기소 퉁을 습격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초팩하였을 것이 라는 점이다 그러나 일정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을 때는 상당한 정 도의 주도켜 역할을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다른 한 설명은 언제나 일본인이 없는 지역에서 시위가 강하 게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인 거주상황과 시위운동간의 상관관계를 쌀펴보면,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분포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함경남도 흥산으로 0.09% 였고, 가장 비율이 높은 곳이 신의주(100%)였는데 그 사이에서 분포 된 232개 府ÐP 중 가장 많은 수가 0.2-0.4%대와 2.0-3.0%대에 분포 하고 었다 그런데 일본인 비율이 0.2-0.4 지역 89콧(38.4%)에서는 전체 1,180회 시위 가운데 402회의 시위가 일어나 1부군당 45회의 시위가 일어났으며, 전체의 34%를 차지한다 2.0-3.0%대 47지역 (20.3%)에서는 340회 시위가 일어나 l부군당 7.2회의 시위가 었어났 고, 전체의 28.8%를 점한다 이컷을 보면 시위회수는 0.2-0.4%지역 보다 2.0-3.0% 지역이 더 활발하게 일어났음을 볼 수 었다 이것은 단지 일본인이 없다는 점이 시위발발에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며, 시위를 주도할 지도자 사명의식, 초직켜 연대의 주체켜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었으며, 이와 더불어 일제의 탄업의 기민성과 강도가 어며 한가 여부가 시위발발과 직결된 것으로 생각원다 함안면 북촌려의 경우 비록 일본인 토지가 다수 보이지만; 그 토지 의 성격이 소규모토지로서 한국인을감시받는노동자로서 지매하는 농장지는 아니었다 또 이 지역이 북촌려만 고립되어 었는 단걸켜인 지역이 아니라, 인근 지역과 학연, 지연, 홍택 퉁으로 얽혀 었는 지역 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넷째, 강명리는 일본인 l명, 대산리는 일본인 4명 소유지가 었는데, 시위초팩는많은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