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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닙 힘안군 3‘1독립운동 31 출하려고 하자 일본 순사는 총 재머리판으로 가격하여 홍철시켰다 오후 9시 3백 명의 시위군중이 다시 모여 철원 주재소를 에워싸고 신영정과 황영환, 신영수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시위대는 일제 군정의 탄압에 물러서지 않고 과감하게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다시 윤사문이 체포되고 시위대는 총검으로 다시 해산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물나지 않았다 4월 3일 제2차시위가 일어났다 3월 23일 시위보다 더 많은 l천 3백 명의 시위군중이 모여들었다 손총일이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션창빠 군중들이 연호뼈 뒤따랐다 수비대가 출동 하여 군중을 해산시키고 횡대수, 이원식을 체포하였다 오후 5시 다시 8백 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음내를 누빈 후 철원주재 소에 몰려가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투석과 몽퉁이로 순사들 과 맞섰다 수비대가 출동하여 손총일, 엄주신, 박순일, 김상률, 청영 보, 박정천, 윤형규퉁이 또 체포되었다 이에 시위대는 친일 면장 김 보한의 집을 습격하였다 다시 주영호 이령리의 김투량이 체포되었 다 군중들은 이후 해산하였다65) 일제측은 이날의 시위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훌훌:t~ 짧原, 三B 午용 三'*li 約 E百 名의 훌民이 同B의 市B을 利用하여 홉흉올 !III~하고 훌原훌찢홈앓흉%로 올려요므로써 홉없훌 二名융 협*했는데 훌훌이 훌짧올 들고 흥行하므로 훌山훌뼈兵없의 m훌兵과 Iß.力하여 갚뼈를 짧 얽하여 -1111 篇It시켰는데 흥훌은 그래도 그 附近에 았으연서 호~ 篇짧}지 않아 目T 훌짧중이다 (6) 65) 이들의 활동에 대한 관절푼이 남아있지 않으나, 찰웬연 ^~무소의 「범죄인명 부 .• , 부산지방법웬 마신지갱의 「형집행원부」 퉁에서 손총일이 징역 I년, 박 순익, 김상률, 정영보가 징역 8월, 박정천, 유형규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 년, 이웬식, 주영호, 신영정, 신영수, 황영황이 징역 6월형올 받았다 질북 연개장터 시위 주도자인 윤사문, 김두향도 찰웬의거에 장여빼 징역 6월형 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