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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준비를 위해 군북으로 철수하였다 3월 20일 군북 시위운동은 전 날의 합안읍내 시위로 일체의 감시가 심해지자 두 단계로 나누어 진 행했다 제l단계로 3월 20일 오전 9시경 주동자 초상규풍은군북면 덕대 리 남단 동촌려 신창야학교 교청에서 학생 5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 서를 낭독하고 대효똑립만세를 불렸다 이를 탐지한 일제는 군북 경 찰관 주재소에서 파견되어 와 었던 진해만 중포병대대 특무초장 。1 하 16명을 출동시켜 해산시켰다5씨 제2단계로 시위 주도자들은 군북장터에 예청된 시위를 위해 12시 쯤 군북장터로 갔다 군북장터에는 장꾼과 장꾼으로 가장한 민중들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득이 장소를 장터에서 인근 군북옛가로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옛가에 는 일본측 기록에는 3천 명의 시위군중이 모였다 하나 약 5천명으로 추산되었다 군중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전단을 매포하고 l시 청각이 되자 초상규가 둑 위에 올라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뒤이 어 초용규가 대효똑립만세를 선창하자 만세 합성이 빽이산에 메아리 쳤다55) 시위대는 대열을 지어 신창, 소포, 덕대, 안도를 행진하며 순회하였 다 저자의 장꾼들도 철시하고 합류하였으며, 밭을 매던 농부와 아닥 네까지 합류하여 시위대는 5천 명으로 늘어났다 일본 진해만 중포병대대 특무초장 흙問를ìi'leB 이하 16명이 출동하 여 경계에 들어갔고 군경과 뭄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청에서 시위대 는 흙問 초장의 상의를 찢고 손가력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시위대 는 공포를 쏘았다 총소려에 놀란 군중들은 순간 흩어졌으나 공포임 S씨 옳lE明. 1967. r행훌훌효훌動'Jl(民흉主훌훌훌훌). 398-399쪽 55) 8:>Ji:훌훌省'. 1919. '1919319 장상남도 함안군 군륙 소요 진압상황」, r흩홈훌 省文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