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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닙 힘안군 3‘1독립운동 25 의 초용태, 모로려의 초문재, 중암리의 노수청, λ}도리의 이점수, 법 수면 강주리의 초문규 퉁에게 통보되고, 동려별 동원잭엄자가 션청되 었다요) 동려 잭임자들은 3월 10일 군북 장날, 해질 무렵 빽이산 서산서당 에 모여 거사계획을 구체화시켰다 거사일은 3월 20일 장날 청오로 하고 장소는 군북 장터로 하였다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는 서산서당 과 여항산 원효암에서 제책}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가 장문이라 퉁사하기도 힘들고, 내용 도 어렵기 때문에 초주규, 초상규, 초용대, 초용규, 초경식, 초동규, 초 석규, 초성규 퉁이 서산서당에 모여서 이를 쉽게 수청하여 제작하였 다 태극기는 신창야학교 퉁사기를 이용하여 퉁사하였다 채색은 원 효암 의상대에서 빨강과 파랑색 물감으로 완성하여 산대 가지를 잘라 깃대를 만들었다 이들이 서산서당에 모일 때는 한문강학을 핑계로, 원효암 의상대에 모일 때는 나무꾼으로 가장하여 일본 정활의 눈을 파했다 한지는 서 산서당의 초석규가부담하였고, 태극기 제작하는 팀의 식량은오곡리 박상엽이 부담하였다 군북면 서기 이재형은 일본 경찰과 밀청들의 동태를 청탐하여 나수범을 통해 서산서당에 매일 보고하였다 이렇게 하여 완벽한 책임분담과 단결력으로 기밀을 유지한 채 준비작업을 할 수었었다 서산서당과 원효암에서 제작원 태극기와 전단 형태로 제작원 선언 서는 오곡리의 김삼도, 사촌려.91 김우곤, 동촌려의 이원필 퉁이 나무 지게와 장보따리에 숭겨 군북장터로 옮겼다3 3월 18일까지 준비를 마친 군북 인사들은 3월 19일 함안 융내 시 위운동에 초k져하였다 그후 검거가시작되기 전 군북 인사들은군북 5기위와같음 53) 추호맺, 1998, 위 왜, 6ι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