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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요후 마산 중포뱅(훌뼈챙 대대로부터 포뱅이 자동차로 급히 웬쪼하 러 온 모습을 보자, 이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즉시 해산하였다 5띠 그러나 합안군의 만세시위는 이로써 물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군북시위로 이어져갔다 4) 군북면시위 광무황재 인산 참관을 위해 함안면 시위 주도 인사들인 초병홈, 초 문국, 호댄열 퉁이 서울에 갔을 때 군북면 인사들도 함께 상정하였다 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는다 함안시위 주도자들은 상정하였다가 귀향 한 3월 5일 바로 독립운동을 위한 협의모임을 갖고 3월 19일 함안장 날 시위운동을 결정하자 그 일원이었던 이희석은 평소 친분이 었는 군북면 사촌려의 초상규를 앞세워 군북면 사촌려 초용대.91 사랑채를 핫。 w 다 이희석은 초용대의 사랑채에 모여 었던 초상규, 초경식, 초 주규, 초석규, 초형규, 초용섭, 초용규 퉁에게 3월 19일의 합안읍내 장날 시위에 초L석할 것을 요청하고 이 자리에서 함안읍내 시위 후 그 다음날인 3월 20일 군북에서도 시위운동을 벌일 컷을 결의하였다 초상규 퉁 군북 인사들은 이에 각 면려 별로 친인척과 서산서당, 신창야학교 관계자들과 접족하여 츰뼈를 독려하였다 이에 따라 초용 대는 대산면 산서리 발채에 었는 처남 박주범에게 연학하고 이희석 은 누님의 시동생인 7싸면 사내려.91 박학챈11게, 박학찬은 춘곡리의 박학웰l게 연학하였다 동촌의 초용섭에게서 거사계획을 통보받은 이원필은 외사촌 형인 광청리의 이경홈에게, 이경홈은 가야면 묘사리 의 이경민에게 연학하였다51) 군북면 오곡리의 박상엽, 김삼도, 소포려의 이재형, 초성술, 하림리 5이 위 책> 651쪽 51) 추행> I 쨌 r함안 항일독렵훌통사.J> 함안문화웬> 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