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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닙 힘안군 3‘1독립운동 21 면 평림장터 시위, 그 이튿날인 3월 18일 철서면 이협 시위 퉁 연 쇄켜으로 발발하며 3월 19일 합안면 융내시위에 이르게 된다 서울에 국햄l 참관하였던 한문교사 초한휘 퉁 합안면 인사들은 3 월 5일정 귀향하였다46) 이들은 함안면 봉성품의 꽉총한, 한총순의 아우 한총헌(부산상업학교 2년생), 검암리.91 01희석(여항면의 동명학 교 교새, 여항면의 박노일 퉁과 협의뼈 3월 19일 합안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재책}여 축약된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태극기를 제책}였다 또한 각지로 사 람들을 파견하여 군중을 모A게 하였다47) 3월 19일 오후 l시정 비봉산에서 고천제를 올렸다 오후 2시 동명 학교 교사 이희석의 신호로 군중들이 일제히 면 소재지인 봉성리에 모여들었다 그간 여러 차례 일체의 국천침탈에 항의와 항거를 하다 옥고를 치른 바도 었는 안지호는 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대산면 산서 리에서 달려와 머리 만들어 둔 태극기와 대한독립가를 휴대하고 시장 에 모여든 군중에 앞장서 시위운동을 격려하다가 주재소로 연행되었 다 축약된 독립선언서가 군중들에게 매부되고, 태극기가 태평루에 내걸렸다 이희석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이후 3천여 군중이 태 극기를 흔들고 대효똑립만세를 외치면서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함안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갔다 함안 주변지역에서 시위 운동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전날부터 경계를 위해 줄풍해 었던 마산경 찰서장 北村과 함안읍내 주재 순사들이 오만하게 시위를 전압하였다 군중들은 격분하여 도끼와 몽퉁이를 들고 돌을 던지면서 주재소를 6차 례에 걸쳐 습격하고 군청, 우챈소 들에도 밀어닥쳐 기불과 집기를 파 손하였다 세 번째로 주재소로 몰려갔을 때 도끼로 주재소 체장 입 4이 이규석, 위 책, 37'쪽 4꺼 마산정활서장 j야'.IJi'j~외 신문조서, 재관장의 심문조서, 안지호 판결문, 이규석의 위의 왜 퉁올 창고하여 정èl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