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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은 갓개(笠浦) 장터에 출동하여 일반 시장 사람들과 같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하였고 다음 3월 6일 아침에는 임천시장으로 진출할제 임천면 구 교리 생갯골 시위대가 뒤따라와 합세하여 시위하였으며 헌병주재소 다나카(田中) 분대장을 만나 "너희들은 물러가라"고 담판하였다. 금계청년회원들은 이후 홍산 강경 한산 등지에 출동하여 계속 수개월 동안 만세시위운동을 하였다. 특히 삼봉 선생은 국내 감시와 강압이 극도에 이르자 일본 및 대만에 건너가서 지하독립운동을 하였으며 대만 대중시에서는 조선인 친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자금을 거두는 등 활동하다가 1934년 6월 대만 총독부경찰에 체포 구속되어 모진 고문 끝에 동년 10월 4일 대만총독부 대중병원에서 끝내 운명하였다. 왜경은 살인의 증거를 인멸키 위하여 긴급히 시신을 화장하는 한편 부여경찰서에서는 금지되었던 대만행 도강증까지 발부하여 이 증을 지니고 긴급 방대한 백형 허섭씨에게 시신을 인계하였다. 유골이 귀국할 때 갓개포구에 마중나온 저산 8읍 유림 등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10여리에 달하는 만장 행렬 뒤에 왜경 박해로 상여도 없이 뒤따르던 유골은 이곳 초왕리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충화면 노고산에 안치되었다. 군중의 반일감정은 극에 달했고 격분한 금계청년회원들의 항일시위는 최고조에 다다랐으니 감시차 행렬에 끼어든 사복 왜경 형사들은 청년회원들 기세에 눌려 혼비백산 뿔뿔이 도망가고 시위는 가족들의 만류와 마을 원로들의 간곡한 자제 당부에 따라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금계청년회는 충청남부에서 최초로 3.1독립만세를 외쳤고 초왕리는 그 진원지였다. 훌륭한 선배들을 둔 청년회원은 물론 우리 초왕리민 일동은 자긍심을 가질 것이며 더욱 더 단합하고 애향하고 나아가 애국애족하는 길을 찾아 정진하기를 바라면서 여기 초왕리에 금계청년회 독립만세운동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사적비를 건립하는 바이다. 서기 2004년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