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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 예찬 헌성비 옛 충청도 임천군 적량면 소재지로 추정되는 왕골은 옛 마한시대의 소왕국의 본거지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수가 없을 정도로 예로부터 느티나무가 수려하였고 산수좋고 인심이 순박하여 외지에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든 이상향이였습니다. 일제의 강점 초기에 태동한 금계청년회가 충청 서남부 3.1운동을 주도한 후 일제의 혹독한 박해와 해방 후 위정자들의 무관심으로 거의 잊혀질 무렵, 1958년 5월 2일 왕골 청년회 창립을 위한 창립총회석상에서의 일제하 금계청년회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고 박복래씨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기에 회의 명칭을 "금계"로 하여 송계청년회는 재탄생하였고, 이후 왕골 전체가 생동감있게 움직이고 단합하여 "갓개장터에서 지게끈은 초왕리 사람"이란 오명을 벗어던지게 했든 1950년 대 후반, 자유당 말기 열악한 환경하에서 오직 삽과 가래질만으로 초왕리 농로 개척사업을 하고 기타 야학당 청소년 정서함양과 애향심 고취 그리고 식산장려활동 등은 가히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1960년대 후반에 일으켜 세운 "새마을사업"의 효시오, 원조요, 모태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여기 한일합방시 대한독립을 외쳤든 금계청년회 만세운동 사실을 기리는 사적비를 2004년 건립하고 1950년 대 말 재창립된 금계청년회 옛 비를 이설함에 있어 성금을 보내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든 헌성 인사의 이름을 이 작은 비에 새겨 길이 후대에 전하고져 합니다. 서기 2005. 2. 1. 금계청년회 독립운동 사적비 건립 추진위원회 위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