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page


23page

조인원은 충남 예산(禮山) 사람이다. 그의 부친 조종호(趙鍾灝)는 1907년부터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적극 참여하여 덕산지소장(德山支所長)으로 활약하였으며, 그는 그 영향을 받아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19년 5월에 그는 임시정부파견원인 이영식(李英植)과 연결되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충청도 지단(支團)을 조직하고 지단장에 서병익(徐丙益), 부단장 김석주(金錫周), 그리고 그는 서무부장으로서 각종 독립운동 관계 문건의 배포에 주력하였다. 1920년 12월 20일(음)에 '한국인은 납세(納稅)하지 말라'는 내용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정서(軍政署) 명의로 된 선전문을 삽교면 역촌리(揷橋面驛村里) 게시판에 부착하는 등 활약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1년 9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