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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쪼이는 / 태양의광선(光線)을잘보거든 / 흐터저잇는힘을 모어라 / 태양과갓흔힘을모어라 「태양(太陽)을 보고」전문 씨를 뿌리자 씨를 뿌리자 / 묵고 썩은 너른 터전에 / 광이로 쪼 고 호미로 매여서 / 씨를 뿌리자 저ㅡ넓은 / 너른 터전에 가시 덤불로 / 울을 막아 우리의 손으로 / 씨를 뿌리자 / 쭉덕 씨앗 은 다 서풍에 날이고 / 싹 나올 씨앗만 가득히 뿌리자 「씨를 뿌리자」전문 이들 소년시는 ‘서심덕(徐沈德)’이란 필명으로 발표된 작품 이다. 나라잃은시기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덕출이 아닌 ‘서심덕’이란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먼저, 「태양을 보고」에서는 광복을 열망하는 시인의 의지가 구체 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는 나라잃은시기 우리 겨레에게 희 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가진 “백의동포”, 곧 우리 겨레가 “한 많은 반 도”에 “내리쬐는 태양의 광선”처럼 힘을 모을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이에 견주어 「씨를 뿌리자」는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뚜 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다소 누그러 진 어조로 “묵고 썩은” 땅이라도 “우리의 손으로” “싹나올 씨 앗”을 “가득히 뿌리자”고, 곧 우리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가꾸자고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서덕출은 신체장애의 아픔을 안고 살았지만, 개인의 내면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그는 개인과 시대현실에 대한 설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동시는 순진무구의 동 심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 애상적 동심이 고스란히 들앉아 있다. 따라서 그의 동시는 개인의 순수 동심을 넘어,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신음하던 우리 겨레에게 광복에의 희망 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것이다. 2. 나라사랑과 지역사랑의 동심 서덕출은 몸을 다친 뒤, 1912년에 울산시 중구 복산동 512- 8번지로 이사를 했는데, 넓은 정원과 연당이 있던 그곳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창작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어린이들의 구체 현실과 일상적 삶을 노 래한 생활동시가 많다. 특히 농촌 어린이의 삶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나라잃은시기 당대 어린이를 향한 지극한 애 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 작품들은 어린이의 마음가짐을 일러주는 교훈적 동시 이다. 나라잃은시기의 절망적 현실 앞에서 어린이들의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는 사려 깊은 작가의식이 잘 담겨 있다. 그 의 작품세계가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세계이면서 구체 현실 의 한가운데 있다는 점은 매우 값진 성과이다. 우리 오빠 날만 새면 / 지개를 지고 / 들로 들로 헤매이며 / 일 을 하는데 / 앞집에 정희 오빠 / 놀기만 해요 // 산에 들에 할 일은 / 수 없다는데 / 손발에 흙 묻는 일 / 하기 싫다고 / 굶어 죽을 센님이 / 되어 있지요 「우리 오빠 정희 오빠」전문 봄날이다 순희야 / 들로 나가자 / 씨뿌리는 오빠의 / 시중을 들자 // 힘차게 멍에 끄는 / 누렁이 따라 / 우리도 부지런히 / 일을 배우자 「들로 나가자」전문 나라잃은시기 생계로 이어진 농사일에 어린이의 노동력 또 한 절실했다. 이들 작품은 그 무렵 현실에서 어린이들의 자 세를 가르쳐주고 있다. 앞의 시는 “우리 오빠”와 앞집의 “정 희 오빠”를 두고, 어린이의 생활상을 서로 비교하고 있다. 시 적 화자의 오빠는 “날만 새면 지게를 지고” 들에서 힘들게 일하지만, “정희 오빠”는 “손발에 흙 묻는 일 하기 싫다고” 놀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우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고통을 걱정했으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순수 동심은 나라잃은시기의 겨레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넓은 세상에 집도 많건만 / 거지는 엇지타 집이 없어 / 한울에 뜬 별을 등불노 삼고 / 외따른 동리의 나무밋헤서 / 고생의 한 심을 속싹이노나 / 아득한 황혼에 눈 가리고 / 외따른 동리의 나무밋헤서 / 두손을 더듬어 잠자리잡는 / 거지의 마음속에서 / 생각의 집을 얼마 지으랴 「거지」전문 내가 입은 이 옷을 / 흉보지마라 / 두득이 옷이라고 / 흉보지 마라 / 이레도 우리 엄마 / 어제 하룻밤 / 등불 앞에 시름한 / 공던 옷이다 「두득옷」전문 주사댁 너 어머니 / 세도에 눌여 / 억울하게 너에게 / 마저란 말가 / 주사란 무엇인지 / 모르지만은 / 사람으론 너나 내나 / 마찬가지다 「다 같은 사람」가운데 이들 동시들은 여느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작가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다. 거지의 노숙생활을 소재로 한 「거 지」는 “외딴 동네의 나무 밑에서 고생의 한숨을” 내쉬며 잠 자리를 찾아야 하는 거지의 빈궁하고 고단한 현실을 노래하 고 있다. 나라잃은시기의 이 같은 현실인식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가 담아내고 있는 거지의 모 습은 당대 우리 겨레의 비극적인 구체현실로 외연을 넓혀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라상실의 현실인식으로 이어진 다고 하겠다. 「두득옷」은 누더기를 기워가며 생활했던 겨레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나아가 “우리 엄마”가 공들여 만든 옷이니 “흉보 지 말라”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주사집 아들 과의 싸움을 소재로 삼은 「다 같은 사람」은 계층에 상관없 이 누구나 평등하다는 시인의 현실인 식, 이른바 계급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거지」와 「두득옷」은 나라잃은시기의 궁핍한 생활상을 보여주며, 「다 같은 사람」은 계급의식에 입각한 삶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수수대 밭고랑 콩가지잡고 / 어머니 아버지 외한숨쉬오 // 올 같은 풍년은 또언디는데 / 어머니 아버지 외한숨쉬오 「한심」전문 누른논에 허제비 멍텅구릴세 / 요리조리 참새가 놀느대여도 / 말한번도 못하는 멍텅구릴세 // 누른논에 허제비 바보춧길 세 / 도적떼들 참새가 앞에안저도 / 활한번도 못쏘는 바보춧 길세 「허제비」전문 이들 작품은 농촌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심」은 ‘한숨’의 지역어로 읽힌다. “풍년”이 들었지만, “밭고 랑”에서 한숨 쉬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의아한 심 정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잃은시기의 농촌 실상과 농부의 속내를 암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허제비」는 ‘허수아비’를 일컫는다. “누른 논에” 세워져 있 는 허수아비를 의인화하여 “멍텅구리” “바보축구”로 노래하 고 있다. 논에 있는 곡식을 “도적떼들 참새”가 놀려대고 빼 앗아가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나라잃은시기의 ‘농 부’에 비유한 작품이다. 이들 동시는 농민으로 대표되는 농 촌 현실뿐 아니라 광복을 염원하는 나라 현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같이 광복에의 열망은 다른 작품에서 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만흔우리반도(半島)에도 / 태양은태양은 / 그대로쏫는고나 // 신선(新鮮)한백두산(白頭山)우에서 / 반만년(半萬年)의우 리역사(歷史)를 / 한만흔반도에 / 해푸러놋코 / 밤들도록번쩍 이고나 // 아아백의(白衣)의동포(同胞)들아 / 한만흔이땅에 / 169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1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