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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홍이섭 교수는 이 두 책의 구조가 서로 비 슷함을 말하였고, 새 나라의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염원하여 쓴 『나라사랑의 길』에서 외솔 선생은 민주주의 본질과 그 실제를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풀이하였다. 첫째, 민주주의는 겨레 또는 국민의 각자의 평등한 권리를 주창한다. 둘째, 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 셋 째, 민주주의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신뢰를 가진다(나라사 랑의 길46-47쪽). 또 외솔 최현배선생이『조선 민족 갱생의 도』에서 민족적 질병을 진단한 것과는 다르게『나라사랑의 길』에서는 우리 겨레가 본디 빛나는 역사와 우수한 소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국민정신이 일그러진 탓으 로 나라가 혼란과 침체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나라가 흥하 게 하는 방법과 원칙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나라사랑의 길, 294-313쪽). 또 외솔선생이 지은 책속에서 늘 교육의 중 요성을 강조하면서 늘 강조하는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 는 인간 교육이었고 그러한 교육에서는 도덕교육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나라사랑의 길』에서도 정신적 부활을 위하여 겨레 각자가 지켜야할 덕목들을 강조 하고 있다(나라사랑의 길 470-480쪽). Ⅴ. 맺는 말 외솔 최현배선생의 학문은 단순한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 라, 민족문화의 역사적 의식을 전제한 민족문화창달을 위한 학문연구라는 특징이 있다. 외솔 선생은 평생 이루고자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우 리말과 글에 대한 창조적 의욕은 끊일 줄 몰랐고, 그 학문은 언제나 겨레사랑, 나라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볼 수 있 다. 온갖 정성을 다한 우리말과 글 연구의 바탕에는 “말과 글 에는 겨레의 얼이 담겨 있다.”라는 말과 글 그리고 겨레 한 몸의 언어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언어관은 말과 글 연 구에서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에 필연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외솔 최현배선생은 한글이 우리 민족 의 지적산물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확신하며 한 삶을 살았 다. 이러한 외솔 최현배선생 삶의 구도는 크게 학문과 실천 으로 그려지고, 그 실천은 반드시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으 며, 그 밑바탕은 겨레와 나라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충성 이 무르녹아 삶의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나라사랑과 겨 레사랑은 자신의 한 삶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해 온 생활의 원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외솔 최현배선생은 나라와 겨레사랑을 바탕으로 한 민족자주정신에 철저한 민족주의자, 민주정신에 투철한 민 주주의자, 등으로... 다시 말하면 이런 사상은 주시경선생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솔선생께서 이 세상을 떠날 때(77살, 1970. 3. 23)까지 여 러 면에 몸 바쳐 일하셨다. 선생님의 얼은 나라사랑과 겨레 사랑의 은인으로 겨레역사에 길이 기록될 일이다. 또 선생이 걸은 길은 일제 치욕에서 벗어나려 몸 바쳤고, 광 복 이후의 겨레역사 형성과정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반역 사의 거센 세력과 투쟁하면서 영원한 겨레문화 창조를 위하 여 겨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새로움을 개척하기 위하 여 몸 바쳐 전력투구하였으므로 “외솔은 20세기 한국이 낳 은 올곧은 석학-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추앙해야 할 가장 큰 학자이고,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떠났던 연세대학교로 돌아가 다시 교수로 취임하였다. 되짚 어보면, 해방 전에는 민중 계몽과 독립구국 의식 고취를 위 해 ‘흥업구락부 ’활동과 조선어학회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해방이 되자. 정부에 들어가 편수국장으로써 이 나 라 말·글교육의 기초를 세웠다. 그의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연구가 단순히 학문적 관심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은 외솔선생의 글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사람의 겨레로서 그에게 글의 있고 없음이 그 야 만의 비(卑)와 문명의 존(尊)을 가르치게 됨은 물론이거니 와, 글을 가진 겨레 가운데서도, 그 가진 글의 좋고 나쁨이 그 겨레의 우(優)와 열(劣)을 가르며, 대(大)와 소(小)를 가 르는 것이다. 보라! 오늘날에 있어서 세계무대에서 가장 활보하는 겨레는 다 훌륭한 글의 창작자, 또는 소유자, 또는 완전한 사용자가 아닌가? …”라고 하여 아직 잘 닦여지지 않은 한글을 유용 한 글자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내는 길의 하나로, 우리말의 어 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대중이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 게 하며, 우리 글, 곧 한글의 조직을 합리적으로 연구하여 합 리적인 표기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지 적한바 있거니와 외솔의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연구는 실용· 실천적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한 주장이 한글맞춤법의 제정과, 표준말 사정, 한글 가로쓰기, 한글만 쓰기의 주장으 로 이어지고, 이들 문제를 국어 정책화하여 성공적으로 정 착시킨 것이다. 외솔선생은 우리나라가 독립하였을 때 그, 새 나라를 자유시민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언어, 문 자를 합리적으로 정리, 통일하고자 했던 애국적 국어운동의 목표가 1933년에 마련된 ‘한글맞춤법통일안’으로 큰 부분이 성취되어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거니와, 이 일에 외 솔이 제정위원, 수정위원, 제안 설명위원, 조선어학회의 맞 춤법 통일위원회 의장 등으로 참여한 것은 그가 위에서 말 한 것과 같은 실용적, 실천적 국어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이 맞춤법은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중심이 되 어 제정한 만큼 주시경 학파가 주장하던 바를 기반으로 하 고 있지마는 외솔의 생각이 크게 반영되었다. 용언의 활용 체계와 어간, 어미의 개념, 체언과 토의 개념은『우리말본』 의 체계가 그대로 수용된 것이며, 불규칙 용언의 활용형을 소리대로 적도록 한 것도 외솔이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 다. 외솔의 제안이 ‘한글맞춤법통일안’에도 그대로 반영되 었다. 외솔은 연희대학교의 교수로 다시 돌아와 연구생활을 하는 한편, 많은 저서를 연달아 내면서, 한글 전용, 우리말 다듬 기, 나라사랑, 국어교육 등에 관한 주장을 펴내 국어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모든 저서를 요약하여 보면, 한글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곧 겨레를 사랑 하는 도리니, 그러므로 한글을 갈고, 닦고, 밝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 나라와 겨레, 한글은 삼위일체가 된다는 신념을 뿜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나라사랑의 길 외솔 최현배선생은 6.25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란할 때, 위태 한 나라를 걱정하면서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을 지어, 나 라말 다듬기의 충정을 세상에 알렸고, 잇달아 『나라사랑의 길』짓기를 시작했으나, 눈앞에 급한 국민을 경장하고자 먼 저 『민주주의와 국민도덕』을 지어, 널리 학교 교육에 힘을 쏟았다.『나라사랑의 길』은 1958년에 끝을 맺었다. 이런 것 을 볼 때, 외솔의 나라사랑 정신은 어릴 때부터 싹트기 시작 하여, 그 한 삶 동안 한결 같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선 민족 갱생의 도』와 『나라사랑의 길』과 차이가 있다면 앞의 책은 ‘겨레’가 사랑의 대상이었다면 뒤의 책에는 ‘나라’ 가 사랑이었다는 점이다(나라사랑, 10집). 이렇듯 외솔 선생 의 나라와 겨레의 영원한 발전을 절규하고 부르짖는 ‘나라 사랑의 사상’은 시간을 넘어서 한결 같음을 꿰뚫어 볼 수 있 다. 이는『조선 민족 갱생의 도』가 『나라사랑의 길』로 이어 지는 까닭이다. 163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162 | <참고 자료> 김석득(2000), 외솔 최현배 학문과 사상, 서울: 연세대학 교 출판부. 고영근(1995), 최현배의 학문과 사상. 서울: 집문당. 유동삼(2005), 우리말 우리 글 사랑, 대전: 내일기획. 장원동(2010), 최현배의 교육철학, 서울: 형지사. 최현배(1971), 조선 민족 갱생의 도, 서울: 정음사. 최현배(1958), 나라사랑의 길, 서울: 정음사. 허 웅(1993), 최현배, 서울: 동아출판사. 외솔회(1973) 나라사랑, 1집,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