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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반대로 ‘거북=푸로메디어쓰’로써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 본제국을 상징하였다, 윤동주가 의도한 이런 당대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인식은 조선의 젊은 지성인으로서, 동아시아의 안목을 벗어난 세계 정치사라는 거시적 안목에서 세계의 역 사를 바라본 것이다. 그는 무모한 일본제국은 결코 오래 지 속 못하고 패망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확신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리 앞을 보는 자인 프로 메테우스(Prometheus)의 관점에서 일제의 패망’을 제시하 는 강력한 저항시를 짓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윤동주는 이상화, 이육사, 김영랑으로 이어지는 일 제 강점기 저항시의 역사에서 마지막 꽃을 피운 저항시인으 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윤동주는 「간」의 마지막 연 에서 세 번에 걸쳐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악인형 인물로 변형시킨 ‘푸로메디어쓰’에 대한 죄를 통하여 일제를 강력하게 징벌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Ⅳ. 덤으로 살며, 나라 지키는 길 1. 나라 세움과 우리말·글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통치를 받는 동안 우리의 국 어는 일본어요. 우리말은 국어가 아닌 조선어일 뿐이었다. 공식 언어로서 일본어의 사용이 강요되었고 모든 교육이 일 본어로 이루어졌다. 한글은 가르치지도 않았다. 우리는 모 국어를 잃음으로써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민족적 유 대가 끊어질 뻔하였다. 해방이 되어 우리말이 국어로서의 지위를 되찾고, 각 급 학교의 교육이 국어로 이루어지게 되 었으나 국어는 잘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사정안’이 마련되기는 하였으나 널리 보급 되지 않았으며 국민의 대부분 한글조차 읽을 수 없는 문맹 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은 국어를 정 비하고, 우리말로 교과서를 만들어 국어를 교육의 도구로서 부족함이 없게 하고, 시급히 필요했던 국어교사들을 길러 국어 교육이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일을 하는 한편, 한글만 쓰기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언어는 국가 성립의 기본 요건이다. 원 활한 언어 소통, 바르고 정확한 언어 표현력이 없이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다. 이러한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시람, 대한민국을 세운 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국어학자이며 동시 에 국어 교육자, 국어 운동가였던 외솔을 꼽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 편수국장이 되어 새 교과서를 만듦 첫 번째 편수국장시절 외솔선생은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방향을 세웠다. 미군정청 편수국장에 취임하여, ‘조 선교육심의회’가 구성되었는데 외솔은 그 중의 교과서편찬 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 수립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때 ‘조선교육심의회’가 결의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은, 첫째, 초·중등학교 교 과서는 모두 한글로 하되 한자는 필요한 경우에 괄호 안에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며, 둘째, 교과서는 가로쓰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말·글 정책의 큰 틀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 고 1948년 10월에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된 ‘한글 전용법’에 따라 우리말은 한글만으로 쓰되 얼마동안 필요한 경우에 한 하여 한자를 병용한다는 내용 바로 이 교과서 편찬 방향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말 출판물이 모두 한글만 쓰되, 가로쓰기를 하고 있는 것도 이때 정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방향으로 인 한 것이다. 편수국의 주요 업무가 각종 교과서를 펴내는 일 이다. 1945년 9월21일에 편수국장에 취임하여 1948년 9월 21에 퇴임하기까지 만 3년 동안 외솔은 저 유명한 『한글의 첫걸음』을 비롯한 각종 교과서를 50여 가지 이상 펴냈다. 나 아가,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들을 우리말로 다듬어 만든 “건 널목, 도시락, 단팥죽, 책꽂이, 통조림, …” 등이 자리를 잡을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 과의 축적의 끼침이다. 그러므로 조선말의 말본을 닦아서 그 이치를 밝히며, 그 법칙을 드러내며, 그 온전한 체계를 세 우는 것은, 다만 앞사람의 끼친 업적을 받아 이음이 될 뿐 아 니라, 나아가 계계승승할 뒷사람의 영원한 창조활동의 바른 길을 닦음이 되며,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함이 되 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조선어 학회’를 어문활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로 규정하 여 주요 회원들을 체포, 징역형에 처한 사건이다. 1938년, 윤동주가 연희전문 1학년에 입학하여 외솔 선생의 <조선어> 강의를 듣고, 그는 외솔 선생의 정신을 물려받아 겨레사랑의 정신을 ‘시’로 표현하였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4 학년을 마치면서 지은 대표적인 작품이 「별 헤는 밤」, 「서 시」 그리고 「간」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까지 ‘민족시 인’이라 부르는 윤동주의 대표작을 「별 헤는 밤」, 「서시」로 만 생각해왔을 뿐만 아니라, 윤동주가 외솔선생의 정신을 물려받은 사랑스러운 제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같은 해 4월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외솔 최현 배의 조선어 강좌에서 『우리말본』을 배우면서, 스승 외솔선 생의 나라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각오를 1938년 5 월 10일에 「새로운 길」이란 시로 표현하였다. 이 시를 통해서 윤동주는 외솔선생이 강조하는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의 길을 따라 걷겠다는 다짐과 결의를 한 것으로 보 았다. 시의 제목도 작품의 율격도 모두 새로운 곳에서 새로 운 생활을 시작한 젊은이의 건강한 활기에 충만해 있다. 이 시는 3연을 축으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어제도 오늘 도 내일도 가야 하는‘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고 있다. 이 ‘길’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향해 간다는 표현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고, 그저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 로”가는 다소 막연한 이념적인 길이다. 출발점과 그 도달점도 분명하지가 않지만, 그가 걷는 길은 역사적 민족적 길이면서 자신의 내면 공간 속에 놓인 윤리 적인 길로 보았다.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1941년 11월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서시」를 지었다. 이 시에서는 한 청순한 시인이 자신이 개척해 나가야 할 새 로운 길의 출발 선상에서 앞으로 닥칠 세파로서의 ‘바람’ 앞 에서 ‘별 같은 시인’으로 전진하면서 당하게 될 괴로움과 부 끄러움에 대한 탐색의 길이며, 청순성과 진솔성을 부각시킨 시인으로서 고결한 심성과 고난과 희생의 길에 대한 고백이 요 결의를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간」의 핵심적 시어 ‘푸로메드어쓰’에 대한 풀이를 새롭 게 하고 있다. 윤동주는 「서시」를 지은 9일 후인 1941년 11월 29일에는 「간」을 창작하였다. 바닷가 해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푸로메디어쓰 불상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드어쓰. 그런데 이 작품 「간」에 대하여서는 그 동안 시인의 깊은 의 도를 일반 독자는 몰론, 전문가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였다고 한다. 윤동주의 시를 연구한 모든 비평 및 연구에서 는 「간」의 표제로 등장한‘간’에 집착하여 ‘거북=프로메테우 스’로 해석하였다. 그 결과 윤동주가 주체적인 방식을 개발 한 시적 형상화의 이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별 헤는 밤」이 나 「서시」까지의 주제 성향이나 표현 기법이 「간」에도 그대 로 적용하였다. 그래서 「간」에서도 윤동주의 서정적인 자아 는 ‘나’ 또는 ‘프로메테우스’로 투사된 희생적 자아로 잘못 해 석하였다, 윤동주가 ‘이중적 우의법’을 이용하여 ‘토끼=서정적 자아인 화자로서의 나인 동주=독수리’로서 정의의 인물 축을 나타 내었다. 그리고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토끼=서정적 자아인 화자로서의 나’로써 강점당한 조선의 의미를 상징하였고, 이 159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