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page

나라사랑으로 겨레의 얼을 일깨운 외솔 최현배 선생 이성태 외솔회 울산회장 Ⅰ. 머리말 다시 찾은 빛, 광복 70년이 되는 해이다. 많은 애국자들이 노력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지만, 아직 도 우리는 모두 다 찾은 빛의 그날은 아니다. 나라를 잃고 다시 찾은 70년! 다시금 울산광역시에서 되돌아본 광복 70년이기도 하다. 그 동안 나라사랑, 겨레사랑 위해 애쓰신 많은 사람들 가운 데, 우리 고장에서 태어나신 외솔 최현배선생은 문화체육부 의 1993년 10월의 문화인물, 국가보훈처의 2010년 10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한 사람을 두고 이렇게 선정된 사례는 외솔 최현배선생 한 분 뿐이다. 그 만큼 외솔선생의 나라사랑과 겨레사랑, 한글사랑을 위해 남기신 얼과 자취가 너무나 크고 가없음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적에 대해 크든 작던 조금이라도 긍정적 인 평가를 받으며 오래도록 남겨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삶에 남긴 가치 에 따라 평가되어질 뿐이다. 지금도 외솔 최현배선생의 얼 은 때와 곳을 넘어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그의 모든 삶은 위대한 우리말·글 연구뿐만 아니라, 나라 되찾기 위한 고난의 삶으로 나라사랑 겨레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라와 겨레의 이름으로서 더욱 더 찬연히 그 빛을 더 할 뿐이다. 또한 우리는 말과 글을 가졌기 때문에 문화겨 레이다. 하지만, 우리의 말과 글은 나라 안·밖에서 역사적 운명을 함께하며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러나 아직, 우리말·글을 뒤로하고 다른 나라의 말과 글을 무 분별하게 쓰여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훌륭한 우리 선각자들이 한결같은 노력으로 우리말·글은 나라의 운명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지금까지 당당히 겨레 문화 창조 의 노릇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외솔 최현배선생은 훈민정 음 역사 이래 침체하고 병약한 국민정신 문화의 위기를 극 복하고, 쓰러져 가는 겨레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의 얼 이 담긴 말과 글을 연구하고, 지키고, 다듬고, 이를 나라 안· 밖으로 널리 펴는 일에 언제나 앞장섰고 갖은 정성을 다 쏟 았다. 특히, 광복 70년과 함께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고 나라사랑, 겨레사랑을 함께하며 우리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움(갱생 론)을 위해 한 삶을 다 바친 외솔 최현배선생의 자취를 좀 더 알리고자 외솔회가 펴낸 ‘나라사랑’ 1집, 『조선 민족 갱생의 도』, 『나라사랑의 길』을 바탕으로 고영근, 김석득, 허 웅 교 수님이 지으신 최현배선생과 장원동 교수의 『최현배의 교 육철학』, 그리고 설성경 교수의 ‘외솔정신을 계승한 애제자 윤동주’ 특강을 함께 정리해 함께 널리 되돌아보고자 한다. Ⅱ. 나라 구하는 길과 『조선 민족 갱생의 도』 1. 배움의 시작과 시대적 상황 외솔 선생은 갑오개혁이 일어나던 해인 1894년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에서 최병수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갑오개 혁으로 고종은 ‘교육입국조서’에 따라 새 교육기관인 학교가 설립되고, 이어 ‘소학교’, ‘중학교’령이 발표되면서 근대화의 진행과정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자각이 대두되기 시 작하였다. 또 고종이 법률 명령을 한글로 쓰게 하자. 뒤이어 한글로 쓰인 ‘독립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했다. ‘독립신문’은 순 한글만으로 쓴 우리나라 최초 한글신문이 다. 이 ‘독립신문’은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해 처음으로 자주적 인 인식을 표방했다고 보이며 스스로의 민주·자주·독립의 선언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사상적 대혁명이라 볼 수 있고, 혁명의 도도한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외솔 최현배선생은 태어났다. 외솔선생은 어려서 동네 서당에 처음 들어가 한문을 배우면서 서당 교육 방법이 형 식적이고 단순히 외우기와 읽기인 것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새로운 교육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바꾸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예를 외솔선생님의 책 『나의 걸어온 학문의 길』에서 서당 교육 방법에 대해 신 151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