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page

125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124 |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아명은 해환(海煥), 만주 간도성 화룡면 명동촌 출생 이다. 명동소학교, 중국인 관립 대랍자학교, 용정 은진 중학교, 평양 숭실중학교 편입,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편입을 거쳐,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41년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뒤,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항일 운동의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1945년 2월 28 살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교우관계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함께 하숙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자필 시집을 보관하였다가 출간한 정병욱(鄭炳昱), 초간 시집에 추모시를 쓴 유령(柳玲), 연희전문학교 후배 장덕순(張德順), 고향 후배 문익환 (文益煥) 등이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달을 쏘다」· 「새로운 길」·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으며, 일제에 대한 저항 시 계열의 작품으로는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간(肝)」 등이 있다. 그는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신의 시 중 18편을 고르고 맨 앞 장에 「서시」를 지어 붙인 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제목을 붙여 77부 한정판 시집을 발간하려고 하였다. 원고지에 필사한 것을 3부 만들어 이 중 2부를 스승 이양하 교수와 정병욱에게 주었는데, 시에 담긴 저항 의지를 걱정한 이양하 교수의 만류로 출간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3주기 추도식이 열렸던 1948년에 정병욱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에 의해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윤동주는 자신의 체험과 시대적 상황을 담은 삶과 의식을 노래하였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고, 1968년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윤동주 『윤동주평전』2015, 참조 왼쪽이 윤동주, 오른쪽이 정병욱이다.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윤동주의스승, 최현배 연희전문학교 교수로서 조선어를 가르쳤던 최현배는, ‘흥업 구락부 사건'으로 1938년 연전에 입학한 윤동주는 최현배에게 조선어 강의를 들었다. 최현배의 교수로서 마지막 학기이자 윤종주의 첫학기였던, 1학년 1학기 윤동주의 조선어 성적 은 ‘100점'이였다.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 강의를 들었을때 우리는 얼마나 감격했고 또 영광스러웠고 연희 동산이 얼마나 고 마운 곳인가를 뼈져 리게 느꼈다. 동주가 얼마나 그 강의들을 열심히 들었는지, 항상 옆자리에 앉던 동주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하게 떠오른다... 유령(柳玲) 교수의 증언 중 「윤동주평전」, 송우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