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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광복, 다시 찾은 빛_굳은 의지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든 미래 74 | 위대한 애국지사 우리 조국이 섬나라 왜적의 총칼 앞에 유린당할 때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초개와 같이 버리시고 순국하신 위대한 애국자, 민족의 등불이신 대한 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님 신라 시조왕의 후예로, 관향조(貫鄕祖)는 밀성대군 박언침, 파조(派祖)는 밀직부원군, 문숙공 박중미이며, 대과 급제한 규장각 부제학 박시규 공이 생부(生父)이며, 양부(養父)홍문관 교리 박시룡 공에게 출계하였으니 명문거족의 가문에서 생장하였네 우리 고을 송정동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참찬 허위의 문하에서 수학 한 후 청년이 되어 양정의숙에서 백산 안희제와 함께 정치 경제 법학을 전수했네. 과거가 없어지고, 고등문관 시험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 합격자 10명중 수석으로 합격하여 평양지법 판사로 임명되었으나, 국운이 기울어져 왜적이 침노하매, 단호히 사절하였네 오천석 재물을 다 바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에 추대 되셨네 신분과 지체를 생각지 않고, 신돌석 장군과 의형제를 맺고 청산리 대첩의 장군, 김좌진을 의제로 삼아 부사령에 임명하였네 충청도 대학자 채기중선생은 고헌 의사 보다도 십일세나 년장 인데 부하가 된 것을 보면 고헌 의사의 인품과 덕망과 지도력을 알지 않겠는가 국내 팔도에 독립운동 거점을 마련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신식 군대를 양성하는 등 독립운동 기반을 구축하였네. 독립운동은 정신운동이 선행돼야 함을 갈파하고 친일파 숙청으로 왜적과 밀통하는 고리를 끊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네.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나라는 우리의 손으로 찾겠다는 자주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었네 아! 독립운동의 기반을 공고히 닦아 놓고 실천에 옮길 즈음에 원통하게도 왜적에게 피체되어 38세를 일기로 순국하시니 산천이 울어, 장부의 눈물을 삼천리 강산에 뿌렸도다. 고헌의사의 정신은 3 ․1 운동으로 번지고, 조국 광복의 기틀을 만들었도다. 아! 시대의 선각자요, 구국의 영웅이시여! 위대한 애국지사 박상진 의사의 애국 애족정신은 일월성신과 더불어 청사에 길이 빛나리라. 박종해(시인, 북구문화원장) 母藏未成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한 채 君讐未復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國土未復 빼앗긴 강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死何面目 이내 몸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 걸어갈까 박상진의 유시 박상진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