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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기념비 1919년의 3.1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분한 함성이요.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려는 비장한 절규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국권을 유지 계승하려는 당당한 주장이였다. 남녀.노소.빈부의 구별이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진 거대한 불길의 폭발이였다. 그러므로 삽시간에 3천리 방방곡곡에 번져 하늘이 뻐개지고 땅이 흔들릴듯한 맹렬한 기세였다. 이러한 정당한 평화적인 궐기에 대하여 왜적의 강압은 어떠하였든가. 잔인하고 악독한 살육과 형벌이였다. 이해 양양에서는 4월 3일부터 4월 9일까지 연 7일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함홍기 의사는 경찰서장실에서 피살되고, 읍내시위에서는 권병연. 김학구 의사가 살해되고 기사문 고개에서는 전원거, 임병익, 홍필삼, 고대선, 황응상, 김석희, 문종상, 진원팔, 이학봉 의사 등 무려 9명이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 아래 순국의 영령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무수한 시위자 중에서 80여명이 투옥되어 실형을 받고 그 외에 수많은 양민이 태형을 당하였다. 이렇듯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이곳에, 3.1정신을 이어받아 창간한 동아일보사와 양양군 협찬회가 이 기념비를 세워, 그 거룩한 정신을 만대후까지 길이 받들어 드높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