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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만세운동 유적비 1919년 4월 4일부터 발발한 양양의 만세운동은 함홍기, 권병연, 김학구 의사 등 3명이 경찰서 현장에서 왜경의 총칼에 피살된 후 연일 각 면으로 확산되었다. 동년 동월 9일 현북면에서도 궐기 대회를 마치고 양양으로 들어가 합세할 계획이었으나 지체한 시간 관계로 기사문리 주재소를 공격하기로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관고개"를 넘어 주재소 앞에 이르러 만세를 연호하다가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일제 수비대와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9명이 피살되고 11명이 중상을 당하였다. [ 피살자 ] 현북면 하광정리 - 전원거, 중광정리 - 임병익, 명지리 - 홍필삼, 명지리 - 김석희, 어성전리 - 고대선, 어성전리 - 황응상, 미곡리 - 문종상 도천면 동초리 - 진원팔, 동초리 - 이학봉 [ 부상자 ] 현북면 하광정리 - 이봉우, 하광정리 - 김응옥, 상광정리 - 오세관, 상광정리 - 오문환, 상광정리 - 오세풍, 상광정리 - 황중칠, 어성전리 - 함병원, 어성전리 - 강춘실, 어성전리 - 정홍엽, 어성전리 - 김봉구, 미곡리 - 홍금석 우리는 이러한 일제의 잔악 무도한 만행을 잊지 않고 그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만세공원"을 조성하고 상징조형물을 설치하여 후손 만대에 길이 받들어 전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2000년 3월 1일 글 양양문화원장 고경재, 양양군수 오인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