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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志士 蒼松 尹太炳 先生 功蹟碑(애국지사 창송 윤태병 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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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병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음력 8월경 조병채(趙炳彩)·김영진(金瑛鎭)·윤상기(尹相起)·백남식(白南式) 등의 동지와 함께 당시 중국 길림(吉林)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단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도와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자는데 뜻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펼 것을 주목적으로 비밀결사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였다. 동단은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단원들이 함께 모여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취지와 표방 아래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국내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이때 이들은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 휘하의 천경수(千景洙)로부터 군자금 모집지령과 함께 임시정부경리국경고서(臨時政府經理局警告書)·임시정부총간부유고서(臨時政府總幹部諭告書)·특파원중·납금명령서(納金命令書) 등을 인수받아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그는 조병채·백남식·이상설(李商雪) 등과 함께 1920년 3월 전북 금산(錦山)의 자산가 송석기(宋錫驥)·윤상응(尹相應)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1920년 4월 이상설이 조국독립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동단의 취지서를 소지하고 서울의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계획하던 중 피체됨으로 인해 동단의 조직이 노출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1920년 7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