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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권성이 살던 집은 안동댐건설로 바로 옆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부포못안길 38 번지로 옮겨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다. (위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부포못안길 38번) ▲ 이희경 □ 하와이 이민1세, 여성독립운동가 이희경 2004년 4월 27일, 한 독립운동가 부부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0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양 출신으로 알려진 권도인과 대구 출신 이희경 부부였다. 이희경(1894.1.8.~1947.6.26.)은 대구 출신으로 본래 이름 은 이금례(李今禮)으로, 대구 명치정 2정목(현재 중구 계산동 1 가)89번지에서 전주이씨 이종하와 김정원 사이의 2남 2녀 가운 데 셋째로 태어났다. 1912년 대구 신명여학교의 1회 졸업생 3 명 중 한명이었으며 졸업 직후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가 1912년 10월 영양 출신의 이민노동자인 권도인과 결혼했다. 당시 이희경은 18세, 권도인은 24세였다. 사진신부란 하와이 이민노동자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주로 택하던 방식으로 한국에 있는 처녀들 에 게 사진을 보내어 선을 보고 혼인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1910년부터 미 국 내 이민이 금지된 1924년까지 최대 1,000명의 여성들이 사진신부가 되어 결 혼 이민을 떠났다. 이희경은 그 중 한명이었다. 영양출신의 권도인은 1905년 1 6세 의 나이로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떠났는데, 그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것 은 이때이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알 길이 없다. 사진신부들이 하와이로 들어 오 자, 권도인도 자신의 사진을 국내로 보냈는데 이를 본 이희경은 소극적이었 던 언니를 제쳐두고 하와이로 향하였다. 비교적 넉넉한 형편에서 자랐고 중학교 를 갓 졸업했던 그녀가 사진결혼을 택한 이유는, 미국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 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신혼살림에 공부는 꿈도 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