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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길 길은 항상 어딘가로 통하고 있다. 길 위에 서면, 길은 언제나 우리를 어딘가 로 데리고 간다. 현실의 길은 우리를 이웃 사람들에게로 데리고 가고, 역사 속 의 길 은 우리를 옛 사람들에게로 인도한다. 길은 그렇게 우리를 시간과 공간을 단 축하 여 누군가와 만나게 하는 통로이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누군가와 만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길 위에서 우리가 만 나고자 하는 ‘누군가’는 꼭 사람일 필요만은 없다. 그것은 자연일 수도 있고 , 역 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길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아닌 다른 것과 접촉하고자 하는 의도를 앞세우고 있는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현실 속에서 우리를 나 밖의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길’은 주로 이웃 사 람들과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창구’이다. 그 경우에 ‘길’은 나와 다 른 이 들 사이에 펼쳐져 있는 거리를 단축시키는 수단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나 아 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는 ‘길’은 주로 옛 사람들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적 창구이다. 그 경우에 ‘길’은 나와 옛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시간의 벽을 돌파하게 하는 수단이다. 이렇게 오늘 우리 주변에 펼쳐져 있는 길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단순하게 ‘공간적으로 이동시켜 주는 길’과 ‘공간적 이동’을 통하여 ‘시간 적 거리를 단축’시켜 주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하는 ‘길’의 두 가지가 바로 그것 이다. 앞의 기능은 모든 길이 다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뒤의 기능은 어떤 길이 나 다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유적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길만이 우리를 데리고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윤천근(1999),『퇴계 선생과 도선서원』, 지식산업사, pp.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