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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사람이 모두 14명에 이른다. 그 저항의 길을 본격적 으 로 열었던 이동하는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펼쳤다. 이어 자정순국으 로 저항한 이명우와 권성부부, 6·10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이선호도 모두 이 마 을 출신이다. 또 여성독립운동가 이효정·이병희도 모두 이 마을에 뿌리 를 두고 있다. 부포마을의 흔적은 1970년대 안동댐 건설로 물속으로 사라져 지 금은 사라졌다. 부포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마을모습은 풍요로움과 넉 넉 함, 고즈넉한 풍광이 서린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부포에서 그런 모습 을 찾기는 어렵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봉화금씨 성성재 금난수(1560~1604 ) 종 가를 제외하면 여느 조그마한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다.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가일마을 넓고 풍요로운 풍산들을 앞에 둔 가일마 을은 안동권씨 권항의 후손들이 500여년 세거해 온 곳이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 동가들이 많이 나와 ‘안동의 모스크바’ 로 일컬어진다. 하회마을 입향조 류종혜의 숙부인 류개가 처음으로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 다. 그 뒤 류씨와의 혼인을 통해 순흥안씨, 안동권씨, 광산김씨 등이 입향했 으나, 안동권씨가 마을의주 세력을 이루었다. 주산인 정산(井山)을 사이에 두 고 이웃에는 안동김씨 동성마을인 풍산읍 소산마을이 있다. 일제강점기 풍산 들을 중심으로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이를 이끌었던 인물이 가일 마을의 권오설이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가일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