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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경북의 여성독립운동가 9) 강 윤 정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 □ 만주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남자현(南慈賢)(1873.12.7-1933.8.22)은 1873년 통정대부 남정한(南珽漢)과 이씨부 인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393-6번지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14세에는 사서(四書)를 독파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 는 19세에 이르러 안동시 일직면 귀미동 출신의 김영주(金永周)와 혼인하였다. 그 러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896년 의병항쟁에 나섰던 남편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23세의 남자현은 이때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고 태어난 유복자를 기르며,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겉으로는 다른 보통의 여인들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은 ‘국권회복’이라는 큰 과제를 던져주었다. 그 녀의 가슴에는 ‘남편의 원수! 일본’을 향한 큰 불덩이 하나가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1910년 나라는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남자현의 인생에서도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는 1913년 무렵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연락하며 나라를 되찾는데 힘을 보태고자 하였다. 46세가 되던 1919년 2월말 남자현은 드디어 서울로 갔다. 서울 에서 열흘 남짓 3‧1독립만세 활동을 펼쳤던 그녀는 만주로 향하였다. 46세의 나이 에 여성의 몸으로 만주망명을 결행한 것이다. 만주에서 그녀는 50세가 되던 1920년대 중반까지 교육을 통해 여성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 뒤 남자현의 이름이 널리 드러난 것은 1927 년에 있었던 ‘길림사건 吉林事件’ 때이다. 이는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대동단결을 다지기 위해 길림에서 큰 집회를 열다 체포되어 길림감옥에 갇히게 된 사건이다. 9) 이하 자료는 강윤정(2011), 『경북여성인물 탐방가이드북』, 경상북도․경북 여 성정책개발원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