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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번호이름한자생몰연대 관계 처 1 김형팔金衡八1887~1965김병식 아들 조창용趙昌容1887~1970김형팔 처한양조씨 부 송병 김시륭金時隆1906~1994김형팔 아들 김시창金時昌1910~ ?김형팔 아들 손봉희孫鳳姬1917~ ?김시창 처 김시훈金時熏1912~ ?김형팔 아들 이만수李晩珠1918~ ?김시훈 처전의이씨 부 근영 2 김병칠金秉七1884~1960김무락 아들 권영대權寧大1882~1958김병칠 처안동권씨 부 병흥 안동김씨安東金氏? 김병칠 처 김덕로金德魯1908~1968김병칠 아들 이계남李季南1907~1990김덕로 처재령이씨 부 삼현 김우로金佑魯1911~1943김병칠 아들 이분이李粉伊1944~ ?김우로 처재령이씨 부 수기 김정로金政魯1916~ ?김병칠 아들 조제하趙濟河1925~ ?김정로 처함안조씨 부 용화  김학로金學魯1936~ ?김병칠 아들 윤상희尹相喜1939~ ?김학로 처파평윤씨 부 치두 김승로金承魯1942~1974김병칠 아들 3김달병金達秉? 金都洛 아들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한 내앞마을 사람들(짙은 바탕색은 여성)> 항상 손님은 많았는데, 땟거리는 부족했다. 점심 준비하느라 어떤 때 는 중국인에게서 밀을 사다가 국수를 만들곤 하였다. 마당의 땡볕 아래 서 맷돌을 돌려 가루를 내고, 또 그것을 반죽해서 국수를 뽑았다. 고명 거리가 없으니 간장과 파만 넣어 드렸다. 삼시 세끼 준비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시집온 다음 해에 한번은 감기가 들었으나 누워서 쉴 수가 없었 다. 무리를 했던지 부뚜막에서 죽 솥으로 쓰러지는 걸 시고모부(강남호 ; 필자 주)가 지나가다 보시고는 얼른 부축하여 떠메고 방에다 눕혔다. 다 음 날도 못 일어났다. 그 때가 열일곱 살, 그러니까 1922년이었다.(허은 회고록) 8) 김희곤, 『안동사람들이 만주에서 펼친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11, 23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