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page

- 18 - 【충효당】 재령이씨의 입향조인 이애가 지은 충효당은 장계향이 분가하기 전까지 살 던 곳이다. 충효당 대문 앞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오롯이 서 있는데, 시아버 지 가 심은 이 은행나무 아래에 솥을 걸어놓고 몰려드는 기민들에게 도토리죽을 쑤 어 구휼했다고 한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우계종택】 충효당 아래에 있는 우계종택은 운악 이함의 둘째 아들인 우계 이시형이 분가 하 기 위해 지어진 집이다. 우계는 과거에 응시하고 돌아오는 길에 27세의 젊 은 나이로 요절하였는데, 아내인 무안 박씨 역시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 두 동 서 가 남편을 따라 순절한 후 장계향은 실질적으로 맏며느리 역할을 하게 된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자운정】 자운정은 장계향 내외가 처음 분가하여 살림을 낸 집터이다. 영남학파의 거 두이며 이조판서를 역임한 갈암 이현일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후세에 이 곳 을 기념하기 위해 ‘자운정’이라 명명하고 태실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갈암종택】 갈암종택은 장계향의 셋째 아들이자 숙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퇴계 학 통 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갈암 이현일의 종택이다. 청송군 진보면 광 덕 리에 있었으나임하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갈암은 어머니의 삶 을 존경하여 그 행적이 담긴 ‘정부인안동장씨실기’를 남겼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난고종택】 조선 중기 학자로서 짧은 생애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병장으로서 효자로 서 충과 효, 학문 등에서 훌륭한 삶을 보여준 난고 남경훈의 아들 남길이 인조 2 년에 건립한 종택이다. 장계향은 첫째 부인인 광산김씨 소생의 아들 상일을 가 르치기 위해 나랏골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살던 남경훈을 찾아 매일 업 고 다니는 정성을 보였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원구리) ▶삶의 확장과 사회적 모성의 발현, 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