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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아버지와의 어린시절】 애야, 아까 내가 수업을 하다가 보니, 너도 저만치서 원회운세(元會運 世)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구나. 그래, 우주의 1년인 대주기가 몇 년인 줄 알겠느냐? 그리고 1회는 또 몇 년이고? 소개벽은 언제 일어난다고 하더냐 ? 어린 장씨는 잠시 눈을 감더니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해냈다. 우연히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몸을 숨기고 계속 들었어요. 우주의 1년은 12 만 9600년이라고 하시면서 그게 원(元)이고, 원을 12로 나눈 것이 회라고 하셨으 니까 음 1회는 1만 800년이지요, 그리고 바로 1회마다 소개벽이 일어나 는 것이 고요. “아, 제법 이해하고 있구나, 더 설명할 수 있겠느냐?” “네, 1회를 다시 30운(運)으로 나누면 1운은 360년이 되고, 이를 다시 1 2로 나 누면 1世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1세는 30년인 셈이고요, 이는 우주로 치면 한 시 간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의 한 세대인 30년은 우주의 입장 에서 보 자면 한 시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딸의 대답을 들은 경당선생은 약간 놀랍기도 하면서 매우 흐뭇하였다. 왜냐하 면 아까 제자들에게 원회운세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을 했을 때 이같이 잘 이해하 면서 숫자까지 정확하게 대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 살 정 도밖에 안 된 자기 딸이 저만치서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숩이 생 각나서 물어본 것인데, 딸아이는 잠깐 동안 눈을 감고 계산하는 눈치더니 일일이 숫자를 대면서 대답하는 게 아닌가.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경당선생은 그날부터 아침저 녁 틈만 나면 딸아이와 마주 앉아 「소학」이며 「십구사략」등을 직접 가르쳤 다. 가르쳐준 내용을 묻고 딸아이의 답을 듣는 것이 아주 재미가 났다. 안동 장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충분히 받으며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장흥효는 그 때까지 자식이라고는 오직 그 딸 하나였는데, 총명한 딸아이 를 가르치는 재미에 틈틈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안동 장씨의 아 버지는 딸이라고 해서 특별히 가사노동에 국한해서 교육시키지 않았다. 자연스럽 게 자신 의 지식을 전수하면서 자분자분 가르쳐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신감이 있다. 더구나 자신이 중요하 다고 여 기는 존재의 인정은 든든한 심리적 지지대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안동 장씨의 여유있는 품성은 아마도 이런 시절과 관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