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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이효정” 이육사의 시신을 수습한 “이병희” 이효정李孝貞, (1913∼2010)은 노 동 운 동 으 로 일 제 에 저 항 했 던 여성으로 안동 진성이씨의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회주의운동단체 ‘ 경 성 트 로 이 카 ’ 의 구 성 원 이 었 던 이효정은 1933년 9월, 일본의 거대 방적공장이었던 종연방적 경성제사공장 여성직공파업을 주도하여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늘 감시와 취조를 받아오다 2006년 건국포장 받으며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았다. 생존 여성 독립운동가 중 최고령자였던 이효정은 2010년 8월 14일 97세의 일기를 마쳤다. 이병희李丙禧, (1918~2012)는 친정조카인 이효정의 영향으로 종연방적 경성제사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 항일운동 주도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잡혀 갔는데 4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모진 고문을 당한 후 1940년 북경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이육사와 독립운동을 협의하다 북경형무소에 구금되었고 1944년 1월 11일 이병희의 가석방 닷새 후 이육사가 옥중에서 순국해 이육사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였다. 사회주의계열의 항일운동을 했던 까닭으로 숨어지내다 1994년에야 이 사실이 밝혀졌고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효정·이병희의 고향, 부포마을 (수몰전 전경) 이병희가 수감되었던 1934년의 서대문형무소 부포마을은 본래 안동권씨와 봉화금씨가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퇴계의 후손들이 늘어나면서 진성이 씨 동성마을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마을은 독립유공 자로 포상된 사람이 모두 14명에 이른다. 그 저항의 길 을 본격적으로 열었던 이동하는 만주로 망명하여 항 일투쟁을 펼쳤다. 이어 자정순국으로 저항한 이명우 와 권성부부, 6·10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이선호, 여성 독립운동가 이효정·이병희도 모두 이 마을 출신이다. 옛 부포마을의 모습은 풍요로움과 넉넉함, 고즈넉한 풍광이 서린 곳이었으나 1970년대 안동댐 건설로 부 포마을의 흔적은 물속으로 사라졌고, 지금의 부포에 서 그런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위치 :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이효정 체포기사 (조선중앙일보) 1935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