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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金洛, (1862~1929)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서 4남 3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언니인 김우락은 석주 이상룡의 부인이기도 하다. 김락은 18세에 이만도의 아들 이중업과 혼인했는데 결혼 6년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혼자 시어른을 모시고, 일곱 살 된 어린 시동생과 자녀들까지 보살펴야 했다.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시아버지 이만도는 단식으로 순절하였고, 이듬해는 오빠 김대락과 형부 이상룡이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로 떠났다. 그 이후 국내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그 뜻을 이었는데 시아버지, 남편, 두 아들과 두 사위, 그리고 김락 본인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락은 이 가운데 한 가정의 아내, 어머니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도 직접 3ㆍ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가혹한 고문으로 두 눈을 잃은 민족의 어머니였다. 이 사건은 당시 경상북도 경찰부 대외 극비 기록으로 독립운동 당시의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인 『고등경찰요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백하구려 (白下舊廬) 향산고택 김락의 큰 오빠 백하 김대락이 1885년 경에 건립하였 다. 김대락은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는데 여동생인 김락, 조카 김만식·김정식·김 규식, 종손자 김성로까지 항일투쟁을 하였다. 백하구려 는 2008년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위치 :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57) 순국지사 향산 이만도의 옛 집이자, 애국지사 김락의 시집이다. 원래 안동군 도산면 토계리 238번지에 있던 것을 안동댐 수몰로 1976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986년, 한 집안 3대의 독립유공을 기려 ‘삼대독립운동 가문’으로 지정하였다. (위치 : 경북 안동시 명륜동 퇴계로 393) 3대 독립운동가문을 지켜낸 겨레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 “김락” “안동의 양반 이중업의 처 는 1919년 소요당시 수비대 에 끌려가 취조를 받다가 실 명失明하였고, 이후 11년 동안 고생한 끝에 1929년 2월에 사 망했다.”라는 기록이 있는 데 이는 그녀 스스로도 직접 3·1 만세운동에 참가하였음 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2001 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 되었다. ▲ 고등경찰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