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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독립군의 어머니, 의열투쟁가 “남자현” 남자현南慈賢, (1873~1933)은 1873년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1896년에 의병항쟁에 나섰던 남편이 전사한 후 유복자를 기르며,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1910년 끝내 나라는 무너졌고, 남자현은 1913년 무렵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연락하며 나라를 되찾는데 힘을 보태고자 하였다. 만 46세가 되던 1919년 만주로 망명했는데 초반에는 교육을 통해 여성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주로 전개하다 의열투쟁으로 방향을 돌렸다. 1927년 사이토 총독 암살을 시도했고,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이 만주국을 방문했을 때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 韓國獨立願이라 혈서를 써서 잘라낸 두 마디 손가락을 동봉하여 리튼에게 보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33년 3월 1일,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다가 거사 하루 앞서 붙잡히고 말았는데 6개월 동안 혹형에 시달리다가 가족에게 인계된 지 닷새 만에 숨졌다. 1962년 여성 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추서되었다. 남자현지사 생가지 영양3의사비 (英陽三義士碑) 의열투쟁을 펼친 남자현 지사의 뜻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남자현 지사가 태어난 393-6번지 바로 옆인 394번지 일원에 문간채와 본채를 복원하고, 추모각을 세웠다. 옆에는 <남자현지사 항일기적비>가 자리하고 있다. (위치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394) 1977년 삼의사기념사업회가 독립운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영양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현, 엄순봉, 남자현 3인의 공적을 기리고자 건립하였다. 중앙에 자리한 것이 <남자현지사 기적비>이다. (위치 : 경북 영양읍 서부리 영양군민회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