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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풍산들 모습 강경옥姜敬玉, (1850∼1927)은 1923년 안동에서 조직된 풍산소작인회의 집행위원으로 활약하며 농민운동의 현장에서 당당히 불의에 맞선 70대 여류 투사였다. 1850년 무렵 태어나, 17세에 혼인하였는데 31세가 되던 해 남편이 죽자 외아들을 키우며, 소작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려갔다. 평소 지주의 무리한 요구와 일제의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1923년 풍산소작인회가 창립되자 여기에 가입하고, 집행위원이 되어 이를 적극 지원하였다. 소작농의 권익향상에 힘쓰던 강경옥은 1927년 9월, 7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풍산소작인회 정기대회 개최지였던 풍산장터 농민운동의 현장에서 당당히 불의에 맞선 여류투사, 강경옥 풍산소작인회의 주요 활동지이다. 주로 정기총회와 같은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풍산소작인회는 1923년 11월에 조직된 항일 농민운동단체로 회를 이끈 사람은 이준태·권오설·김남수와 같은 양반집안의 청년지식인이었다. 회원은 주로 소작인과 준소작인이 었다. 출발 당시 회원은 2백여 명이었으나 1년 만에 5 천여 명에 이르렀다. 서울과 연계하여 농민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서는 등 안동지역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농민과 청년들은 항일운동의 주체로 성 장하였다. 당시 시장은 없어지고, 주위에는 새 건물이 들어섰다. 풍산장날 전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으나, 평일에는 주 차장으로 활용된다. (위치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안교리(풍산시장)) “소작운동에 분투한 강경옥여 사 영면, 77세의 고령으로” 경북 안동군 풍산면시장에 본영을 둔 풍산소작인회에서 창립 이후 4,5 성상星霜을 시종이 여일하게 악전 고투하든 여류투사 강경옥(77세)여 사는 수월 전부터 신음하든 노환으 로 지난 17일 하오 7시에 영원의 불 귀객이 되었는데… 이준태李準泰 권오설權五卨 외 제씨와 가치 풍산 소작인회를 창립하여 주야를 불고 하고 희생적으로 노력한 결과 7천여 회원의 견고한 결속으로 지금에 이 르러는 전조선 유일의 관이 잇게 하 였으며 특별히 여사는 동회의 재정 이 궁색함을 보고 자기의 소지품 지 환指環 패물 등을 방매하여 회관 비 품과 기타 경비를 보충한 일도 있다 한다. 팔십 노령의 여성으로 소작운 동에 그와 가치 헌신한이는 듬을 다 하여 안동 각 단체에서는 여사의 장 식葬式을 단체장으로 성대히 거행 할 예정이라더라. - 동아일보 192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