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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이인제(李仁濟)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덕겸(德謙)이며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현(玹 ) 과 목사(牧使) 석무(錫武)의 딸 사이에서 인조 24년(1646년)에 태어났다. 재주 가 뛰어나고 성정(性情)이 남에게 구애받지 아니하였으며 무과(武科)에 급제 후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경종 2년(1722년) 향년 77세로 졸(卒)하였다. 묘 는 창녕 용장호 갑좌(甲坐)에 있다. 배위는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를 지낸 효증(孝曾)의 딸인 성산여씨(星山呂氏)이다. 참고문헌 : 전의이씨 부정공파보(경인보), 무과방목 ●이재숭(李在嵩)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초명(初名)은 사목(思睦)이고 자는 영숙(永叔)이며 호는 천와(遷窩)이다. 벽재(躄齋) 규운(奎運)과 명화(命和)의 딸인 한산이씨(韓山李 氏) 사이에서 영조 45년(1769년) 태어났다. 순조 1년(1801년) 신유(辛酉) 식년 (式年) 생원시(生員試)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였고 동년(同年) 순조 1년(180 1 년)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승정원(承政院) 주서(注 書)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주서(注書)로 입번(入番)한데 필한(筆翰)이 물흐르듯 막힘이 없었고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여 진강(進講)을 하는데 강관(講官)이 머뭇거리니 왕께서 공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주서(注書)가 말해보라 하거늘 직 무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김기근(金耆根)이 옆에서 말하기를 상하번(上下番 ) 이 갖추지 못하면 주서(注書)가 문의(文意)를 설명해야지 직무가 아니라고 함 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논리정연하고도 시원스레 아뢰니 왕께서 심히 가 상히 여겨 하교하시기를 이 후부터 주서도 아울러 진강(進講)하도록 하라 하였 다 . 순조 11년(1811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를 거쳐 이조(吏曹)와 병조(兵 曹)의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인 전랑(銓郞)과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와 사 간원(司諫院) 정언(正言) 등 양사(兩司)를 역임하고 순조 33년(1833년) 황산찰 방(黃山察訪)에 나아갔는데 선정(善政)을 베푼 수령(守令)이 갈린 뒤에 그들의 공덕(功德)을 기리어 그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인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 다. 헌종 1년(1835년) 부사과(副司果)에 제수되었다. 태산호망(泰山毫芒) 1권과 황산일기(黃山日記) 등 저서가 있으며 문집 3권이 전한다. 헌종 11년(1845년) 졸(卒)하였다. 초취(初娶)는 유성(惟成)의 딸인 해주정씨(海州鄭氏)이고 재취(再 娶)는 선(繕)의 딸인 예안김씨(禮安金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