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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이뇌왕(異腦王) 「석순응전(釋順應傳)」에 이르기를 “대가야국의 월광태자(月光太子)는 정견모 주(正見母主)의 10세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이뇌왕(異腦王)이며, 신라에 혼처를 구하여 이찬(夷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을 맞이하여 태자를 낳았으니, 이뇌왕은 뇌질주일(惱窒朱日)의 8세손”이라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혼 인관계가 맺어진 시기는 522년이며 『일본서기(日本書紀)』 계체기(繼體紀) 23년 (529년)에는 신라 왕녀와 결혼한 대가야 왕의 이름이 기부리지가(己富利知加 ) 로 기록되어 있다. 대가야는 신라와 혼인관계를 맺어 우호를 돈독히 하고자 하 였다. 그러나 529년 이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지만 이미 신라 왕녀와의 사 이에 월광태자가 태어났기 때문에 파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신라와의 우호 관계(友好關係)는 깨어졌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일본서기(日本書紀)』. ●가실왕(嘉悉王-嘉實王)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서는 가실왕(嘉悉王)으로 기록되 었고 『악지(樂志)』에 인용된「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는 가실왕(嘉實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자 모두 가실왕이 가야국(加耶國)의 국왕으로 기록되어 있어 연맹체 중 어느 가야국의 국왕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신증동국여지 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가실왕과 우륵(于勒)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대가야 의 왕임은 분명한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금 은 중국 악부의 쟁(箏)을 본받아서 만들었다. …… 신라의 고기(古記)에 가야국 가실왕이 당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가실왕은 6세기 초 에 재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5세기 후반 대가야의 활발한 대외 활동을 통해 선진 외래 문물이 수용되면서 악과 악기에 대한 이해와 학문적 소양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실왕의 ‘악(樂)’에 대한 이해는 『삼국사기(三國史 記)』 「악지(樂志)」에 “왕이 이르기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 니 어떻게 하나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하며 성열현(省熱縣) 사람 우륵에 게 명하여 악곡을 짓게 한 배경을 말한 데서 알 수 있다. 지은 악곡은 가야의 지명으로, 가실왕이 ‘악(樂)’을 통해서 대가야 지역에 대한 패권의식(覇權意識 ) 을 표현하려 한 의도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