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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관(肄習官=隸習官)을 역임한 옹(蓊)과 대사간(大司諫) 술(述)의 딸인 영인(令人 ) 죽산안씨(竹山安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성종 23년(1492년) 태어났다. 학행 (學行)으로 천거(薦擧)되어 봉상시(奉常寺)와 관습도감(慣習都監)에서 제례의식 때 등가(登歌)의 노래와 문무(文舞)를 담당하였던 재랑(齋郎)을 거쳐 사헌부(司 憲府) 집의(執義)를 지냈다. 졸년(卒年) 및 묘는 미상(未詳)이다. 배위는 진사 (進士) 달후(達厚)의 딸인 풍산류씨(豊山柳氏)이다. 참고문헌 : 성산이씨 세보(무자보), 고령대관(1959년), ●이옹(李蓊)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수의부의(修義副尉)를 지낸 석보(錫保)와 단인(端人 ) 봉화금씨(奉化琴氏)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봉대부(朝奉大夫) 예문관(藝 文館) 한림(翰林), 예습관(肄習官=隸習官)을 역임하였다. 문학사장(文學詞章)이 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었다. 묘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동 상법림촌후(上法林 村後) 해좌(亥坐)에 있다. 배위는 대사간(大司諫) 술(述)의 딸인 영인(令人) 죽 산안씨(竹山安氏)이다. 참고문헌 : 성산이씨 세보(무자보),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이유석(李惟碩)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자는 대이(大而) 호는 매헌(梅軒)이다. 국포(菊圃) 문룡 (文龍)과 참봉(參奉)을 지낸 취해(就海)의 딸인 진양하씨(晋陽河氏) 사이에서 선조 37년(1604년) 11월 6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며 인조 8년(1630년) 진사(進士)에 입격(入格)하였고, 인조 17년(1639년 )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와 전적(典籍)을 거 쳐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그 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지냈다. 이어 전라도사(全羅都事)와 충청도사(忠淸都事 ) 로 나가 군비증강(軍備增强)에 힘썼으며,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을 지냈다 . 효종 2년(1651년) 함평현감(咸平縣監)을 거쳐 안주판관(安州判官)·영암군수(靈 岩郡守)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치적을 쌓았으며 청렴 강직한 성품으로 선정을 베풀고, 문교(文敎 : 문화와 교육)를 크게 진흥시켜 영암에 있을 때 흥학비(興 學碑)가 세워졌다. 청천(聽天) 장응일(張應一), 현와(弦窩) 이도(李蒤), 태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