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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을 탄핵하고 가산을 적몰했다가 원한을 사 곧 동주부사(東州副使)로 좌천되었 다. 이때부터 스스로를 동안거사(動安居士)라 하였다. 얼마 뒤 전중시사(殿中侍 史)에 임명되었으나 충렬왕 6년(1280년) 감찰사의 관원들과 함께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 충렬왕 6년(1280년) 파직된 후 삼척현의 구동으로 돌아가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은거 하면서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1298년 충선왕(忠 宣王)이 즉위해 개혁정치를 추진할 때 특별히 기용되어 사림시독학사(詞林侍讀 學士)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사관수찬관 지제고(史館修撰官知制誥)에 임명되 었으나 70세가 넘어 현관(顯官)에 제수되는 것이 국가 제도에 어긋남을 들어 거듭 사직을 요청하여 같은 해에 밀직부사(密直副使) 감찰대부(監察大夫) 사림 학사승지(詞林學士承旨)로 치사(致仕)하였다. 충렬왕 26년(1300년) 향년 77세 로 졸(卒)하였다. 註1) 가리현(加利縣) :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은 본래 신라의 일리군 (一利郡)으로 경덕왕 때 성산군(星山郡)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성주(星 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註2) 횡렴(橫斂 ): 법에 근거하지 않고 조세를 거두는 행위 註3) 영선(營繕):건축물 등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행위 註4) 초배(超拜):등급을 뛰어 임용되는 일 참고문헌 : 고려사. 고려사절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이시격(李時格)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정숙(正叔)이고 호는 강고(江皐)이다. 통덕랑(通 德郞) 윤(玧)과 진천송씨(鎭川宋氏) 사이에서 인조 16년(1638년) 태어났다. 어 려서부터 총명하여 문장(文章)과 필법(筆法)에 이름이 높았으나, 문과에 급제하 지 못하여 문신으로의 진출을 단념하고, 숙종 2년(1676년) 무과(武科)에 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