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page

- 78 - 窩)의 한시(漢詩)는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감성의 표출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교유인사들과 주고 받은 수창시(酬唱詩)가 많다. 특히 과재(果齋) 장석 신(張錫藎)은 현와집(弦窩集)을 ‘한 부(一部)의 존주록(尊周錄)’이라고까지 했 다. 장석신(張錫藎)이 말한 존주록(尊周錄)은 존명배청(尊明排淸)의식의 산물 (産物)로 임란(壬亂)에 군사를 파견하여 조선을 구원 해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 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기록이라 하겠다. 그리고 약 60여편의 산문(散 文)을 문집에 남겼다. 각지역의 명사(名士)와 나눈 교유관계(交遊關係)를 살펴 보면 첫째 안동의 안기도(安奇道) 찰방(察訪) 시절 지역을 대표할 만한 개곡(開 谷) 이이송(李爾松), 우천(愚川) 정칙(鄭侙)과 창원(昌原)의 자여도(自如道) 찰방 (察訪)시절 미수(眉叟) 허목(許穆), 유명립(柳命立) 등 우거(寓居)해 들어온 많 은 문인 학사들을 만났다. 둘째 태백오현(太白五賢)인 손우(遜愚) 홍석(洪錫) , 각금당(覺今堂) 심장세(沈長世) 등과 교유가 깊었다. 특히 홍석(洪錫)은 안기도 (安奇道) 찰방(察訪)으로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현와(弦窩)를 전별(餞別)하 면서 지은 시 「귀거래하는 현와(弦窩)를 송별하면서(贈別弦窩賦歸)」가 현재 전 하여지고 있다. 세째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과 그의 외손인 이대기(李大期 ) 를 고리로 전개되는 초계(합천)지역의 인물들이다. 두암(斗菴) 성이도(成以道 ) 의 아우 성이침(成以忱), 성이성(成以性) 등을 비롯한 창녕성씨, 매은(梅隱) 전 영(全滎)을 비롯한 전주전씨, 매죽와(梅竹窩) 노극성(盧克誠)을 비롯한 광주노 씨, 그리고 정곡(靜谷) 조신천(曺信天)을 비롯한 창녕조씨, 오계(梧溪) 조정립 (曺挺立), 조은(釣隱) 한몽참(韓夢參) 등이 그들이다. 넷째 고령 및 성주지역과 현풍권의 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 서암(西巖) 여효증(呂孝曾), 기옹(畸翁) 박 공구(朴羾衢), 태허정(太虛亭) 곽홍지(郭弘址), 국포(菊圃) 이문룡(李文龍) 등을 들 수 있다.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 14-5번지 구담(龜潭)에 사우재(四友齋)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사우(四友)는 주(周)나라의 노중련(魯仲連), 진(晉)나 라의 도연명(陶淵明), 송(宋)나라의 호방형(胡邦衡), 신라의 백결선생(百結先生 ) 등을 뜻한다. 현종 9년(1668년) 향년 76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 면 합가2리 가곡(佳谷) 지현(智峴) 도장곡(道藏谷) 사좌(巳座)에 있으며 형조정 랑(刑曹正郞), 영덕현령(盈德縣令), 함양군수(咸陽郡守)를 지낸 설학(雪壑) 대기 (大期)의 딸인 숙인(淑人) 전의이씨(全義李氏)와 합폄(合窆)이다. 묘갈명은 도사 (都事)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가 찬(撰)하고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 이 행장(行狀)을 지었고 일선(一善) 김선(金揎)이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재 취(再娶)로 현(玹)의 딸인 초계정씨(草溪鄭氏)가 있다. 참고문헌 : 현와 이도선생 유허비명(弦窩 李蒤先生遺墟碑銘), 현와(弦窩) 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