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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으로 언양현감(彦陽縣監)에 임명되어 엄명(嚴明)하고 인서(仁恕)하였으며 정사 (政事)를 관장함에 실제로 은혜를 받게 하였다. 벼슬이 교체되어 돌아옴에 이 르니 주민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워 칭송하여 이르기를 “북으로 향하여 풍의 (風儀)를 바라보는 아래요 남에서는 교화(敎化)하는 가운데 기뻐하였네”라고 하였고 주지(州誌)에 말하기를 “청백한 이름을 새겼다”고 하였다. 생졸년은 미 상이다. 묘는 고령군 개진면 구송천면(舊松泉面) 직동촌후(直洞村後) 축좌(丑 坐)에 있으며 배위 포산곽씨(苞山郭氏)와 합폄(合窆)이다. 참고문헌 : 성산이씨 세보(무자보),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이금혁(李今赫)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순부(順夫)이고 호는 약헌(葯軒)이다. 군자감정(軍 資監正)을 증직(贈職) 받았던 세장(世璋)과 숙부인(淑夫人) 경산박씨(京山朴氏 ) 사이에서 중종 30년(1535년) 외동으로 태어났다.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임금 의 호위와 궁중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군대인 내금위(內禁衛)의 어모장군(禦侮 將軍)을 지내고 만년인 선조 7년(1574년) 고령을 떠나 현재 고성군 마암면 석 마리에 전거(奠居)하였다, 선조 20년(1587년) 졸(卒)하였으며 묘는 고성군 동마 암 초곡 산동동(山東洞) 자좌(子坐)이며 배위는 강수(康壽)의 딸인 숙부인(淑夫 人)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참고문헌 : 고성현지, 고성군지(1995년), 여주이씨 문순공파세보(병신보) ●이난미(李蘭美)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유형(幼馨)이고 호는 양촌(陽村)이다. 진사(進士) 를 지낸 육일헌(六一軒) 홍량(弘量)의 차남으로 선조 25년(1592년)에 태어났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의 문인이며 유일(遺逸)로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 위(龍穰衛)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현종 2년(1661년) 향년 70세로 졸(卒)하 였다. 묘(墓)는 소야방(所也坊) 어곡(於谷) 중산(中山) 사좌(巳座)이다. 배위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삭주도호부사(朔州都護府使) 혼(渾)의 딸인 의인(宜人) 안 양변씨(安陽卞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