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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서인이 정권을 잡은 사건을 말한다. 註2)기사환국(己巳換局) : 숙종 15년(1689년) 남인이 희빈장씨의 소생인 원자 정호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을 말한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 숙종실록, 국조문과방목, 파평윤씨태위공파세보(을축보) ●윤면형(尹勉亨)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통중(通仲)이다. 약우(若愚) 조언(朝彦)과 증직(贈 職)으로 참의(參議)을 지낸 지연(之演)의 딸인 인천채씨(仁川蔡氏) 사이에서 인조 23년(1645년)에 태어났다.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지중추부사(知中樞府 事)를 지냈다. 영조 9년(1733년) 수(壽) 89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상노촌(上 老村) 임원(壬原)에 있다. 배위는 수기(壽期)의 딸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참고문헌 : 파평윤씨 태위공파 세보(을축보), 고령세거성씨편람 ●윤지선(尹止善)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복초(復初)이다.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과 세 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을 지낸 영(泳)과 장흥임씨(長興任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선조 30년(1597년) 태어났다. 공은 지극한 성품과 순수한 행실이 있어서 덕을 감추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 되었다. 충남 연산(連山)에서 처향인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이거한 파평윤씨 (坡平尹氏) 교리공파(校理公派) 고령입향조(高靈入鄕祖)이다. 다섯째 아들인 리 (理)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보사공신(保社功臣)에 책록(策錄)되고 부승 지(副承旨)와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내는 등 귀(貴)하게 되어 이조판서(吏曹 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현종 14년(1673년)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다산 면 벌지리 서원(西原)에 배위 전의이씨(全義李氏)와 쌍분(雙墳)이다. 참고문헌 : 파평윤씨태위공파세보(을축보), 숙종실록, 고령대관(1959년) ●윤충언(尹忠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