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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행실(行實)이 비상(非常)한 것보다 뛰어났다.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후덕(厚德)으로 하였다.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으며 주위의 빈민(貧民)들에게 소원하지 않았다. 고종 26년(1889년) 1월 충무위(忠 武衛) 부사용(副司勇)을 거쳐 같은 해 8월 충훈부(忠勳府) 도사(都事)를 지냈 다. 고종 31년(1894년) 1월 19일 향년 58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합천 야로면 석사촌후(石寺村后) 성현(城峴) 상봉(上峰)에 있다. 초취(初娶)는 화영(華永)의 딸인 영인(令人) 고령박씨(高靈朴氏)이며 재취(再娶)는 학문(翯文)의 딸인 양천 최씨(陽川崔氏)이다. 참고문헌 : 성주배씨 세보(을축보), 고령군지(1959년) ●배준(裵峻)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자는 백고(伯高) 또는 여첨(汝瞻)이며 호는 묵암(默庵 ) 이다. 유학(幼學) 진경(振經)과 참봉(參奉)을 지낸 당(瑭)의 딸인 의인(宜人) 포 산곽씨(苞山郭氏) 사이에서 중종 37년(1542년)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품이 평 안하고 고요하며 말이 적었고 많은 사람이 북적거려 시끄럽고 어수선 하거나 화려함을 즐기지 않아 일찍 스스로 호를 묵암(默庵)이라 하였다. 독실한 행실 로 이름이 나고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예곡(禮谷) 곽율(郭), 용담 (龍潭) 박이장(朴而章) 등 당대에 이름난 선비들과 함께 교유(交遊)하였다. 조 선시대 초야에 묻혀있는 선비로서의 학식과 인품을 갖추고 있으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 이들을 과거시험 없이 발탁하는 인재등용 방법인 유일(遺 逸)로 장사랑(將仕郞)의 품계를 받았고 종9품의 훈도(訓導)를 여러 차례 옮긴 후에 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냈다. 배위는 경선(慶先)의 딸인 숙인(淑人) 풍산 홍씨(豊山洪氏)이다. 묘는 합천군 걸산면(傑山面) 정용촌(正龍村) 뒤 해좌(亥坐 ) 에 합폄(合窆)이다. 묘갈명(墓碣銘)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지었다. 참고문헌 : 면우선생문집권지백오십칠(俛宇先生文集卷之百五十七) 통훈대부행 안음현감묵암배공묘갈명(通訓大夫行安陰縣監默庵裵公墓碣銘), 성주배씨 세보(을축보) ●배태해(裵泰海)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성대(成大)이고 호는 양진당(養眞堂)이다. 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