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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보덕(輔德)으로 왕세자를 모시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은진(恩津)에 안치 되었다가 인조 9년(1631년) 3월 21일 졸(卒)하였다. 묘는 합천군 쌍책면 사양 동 우측 임좌(壬坐)에 있다. 배위는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칭(偁)의 딸인 숙부 인(淑夫人) 진양강씨(晋陽姜氏)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藜室記 述) ●박금동(朴金童)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초휘(初諱)는 금생(金生)이고 자는 군미(君美)이다. 판 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효림(孝林)과 시중(侍中)을 지낸 효건(孝謇)의 딸 인 영인(令人) 여흥민씨(驪興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김 종서(金宗瑞)를 도와 두만강 유역의 6진(六鎭) 개척과 여진족 정벌의 전공 (戰功)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贈職)받았다. 영참판 공파(嶺參判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다. 묘는 고 령군 쌍림면 평지리 만대산 청하공묘(淸河公墓) 좌강(左岡) 술좌원(戌座原)이 다. 초취(初娶)는 예문관(藝文館) 봉교(奉敎)를 지낸 성림(成林)의 딸인 증정부 인(贈貞夫人) 월성이씨(月城李氏)이며 재취(再娶)는 참판(參判)을 지낸 소(昭)의 딸인 증정부인(贈貞夫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이고 삼취(三聚)는 군수(郡守)를 지낸 홍(洪)의 딸인 증정부인(贈貞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참고문헌 : 고령박씨 연원, 고령박씨 호장공파 세보(갑오보) ●박망달(朴望達)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을 지낸 숙동(叔童)의 아들 로 태어났다. 경산현령(慶山縣令)을 역임하였으며 조선시대 최고의 시인(詩人 ) 으로 평가받는 읍취헌(挹翠軒) 은(誾)이 연산군 4년(1498년) 일어난 무오사화 (戊午史禍)로 26세의 나이에 화를 당하자 6촌지간인 공은 1500년초 세거지(世 居地)인 고령을 떠나 성주 황신촌(黃新村)에 시거(始居)하니 고령박씨 성주입향 조(星州入鄕祖)가 된다. 공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직계선조이다. 묘는 성 주군 동면 사읍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