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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경사(京師 : 서울)에서 졸(卒)하였다. 성종 22년(1491년) 기해년에 합천군 묘산 면 아태산(阿台山) 유좌원(酉坐原)에 반장(返葬)하였다. 배위는 군수 석환(石環 ) 의 따님인 숙인(淑人) 양산이씨(梁山李氏)로 묘는 합폄(合窆)이다. 註) 반장(返葬):객지(客地)에서 죽은 이의 시체(屍體)를 제가 살던 곳이나 고향 (故鄕)으로 옮겨 장사(葬事)를 지냄 참고문헌 : 국조방목,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김호진(金虎振) 본관은 일선(一善)이며 자는 문위(文威)이고 호는 진모재(進慕齋)이다. 세심재 (洗心齋) 양정(瀁精)의 장남으로 영조 45년(1769년)에 태어났다. 순조 1년 (1801년) 신유(辛酉)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사간원(司諫院) 정언 (正言)을 지냈다. 순조 14년(1814년) 6월 11일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현 남이 십리(南二十里) 선고(先考) 묘전(墓前) 병좌(丙坐)에 있으며 쌍분(雙墳)이다. 문 집이 있고 묘갈문은 정재 (定齋) 유치명(柳致明)이 지었다. 배위는 무호재(無號 齋) 지존(之存)의 딸인 숙인(淑人)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6년), 고령군지(1996년), 국조방목(國朝榜目) 일선(선산)김씨 문충공파(文忠公派) 세보(기축보) ●김희(金希) 본관은 청도(淸道)이다. 세종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충무위(忠武衛) 중부 사정(中部司正)을 지낸 경손(敬孫)과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낸 개(槪)의 딸인 창녕성씨(昌寧成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점(漸)은 형조판서(刑曹 判書), 호조판서(戶曹判書),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를 거쳐 지돈녕부사(知 敦寧府事)를 지냈다. 조선 태조(太祖) 때 6품관으로서 의흥친군(義興親軍)의 십 위(十衛)에 속하였던 좌우위익용낭장(左右衛翊勇郎將)을 지냈다. 배위는 조봉대 부밀직사정호군(朝奉大夫密直司正護軍)을 지낸 양사(良巳)의 딸인 강진진씨(康 津陳氏)이며 백산분토등(栢山粉土嶝)에 쌍분(雙墳)이다. 참고적으로 태종 11년 (1411년)에 태종의 후궁(後宮)으로 들어간 숙공궁주(淑恭宮主)가 공의 고모(姑 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