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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59년), 경주김씨 수은공파내 참봉공 파보(정유보) ●김집(金戢)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봉직랑(奉職郞)을 지낸 응길(應吉)과 공인(恭人) 분성 배씨(盆城裵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조선시대 돈녕부(敦寧府) ·봉상시(奉 常寺) 등에 소속된 종4품 관직인 첨정(僉正)을 지냈다. 생졸년(生卒年)은 미상 (未詳)이다. 묘는 고령군 서십리(西十里) 반룡사 백호등 손향원(巽向原)에 있다 . 배위는 연(淵)의 딸인 김해송씨(金海宋氏)이다. 참고문헌 :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후 직장공파보(무자보), 고령세거성씨편람 ●김탁(金鐸)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진경(振卿)이고 호는 죽촌(竹村)이다. 사헌부(司憲 府) 감찰(監察)을 지낸 장생(莊生)과 훈련참군(訓練參軍) 승주(承周)의 따님인 정부인(貞夫人) 가수노씨(嘉樹魯氏) 사이에서 6남으로 태어났다. 중종 11년 (1516년)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중종 14년(1519년 )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종 15년(1520년)에 정언(正 言)을 역임하였고, 이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승정원동부승 지(承政院同副承旨)‧병조참지(兵曹參知)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삼사(三司)와 호당(湖堂)에서 직언(直言)을 서슴치 않았다. 중종 28년(1533년)에 경상좌도병 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었으나 중종 29(1534년)에 김안로(金安 老)가 쪽지를 병사(兵使) 공(公)에게 보내어 재물을 요구했는데, 성질이 꼿꼿 한 사람으로 평소 김안로가 몰래 불궤(不軌)한 술책 품은 것에 분개하였다. 그 래서 사자(使者)를 휘어잡아 기를 꺾어 욕보이고는 한 가지의 물건도 주지 않 았다. 이에 이르러 강도 장무작(張無作)을 잡지 못한 죄 때문에 조선 시대에 의금부에 딸려 관인 및 양반 계급의 범죄자를 가두어 두던 감옥인 조옥(詔獄 ) 으로 잡혀왔는데 결국 체직(遞職)되었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도의지 교(道義之交)가 있어 회재(晦齋) 만사장(挽四章)이 전한다. 졸년(卒年)은 미상 (未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