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page

- 40 - 고곡동 산 23의 7번지 칠동산(七洞山) 신좌(辛坐)에 삼위합폄(三位合窆)이다. 참고문헌 : 고령군지(1996년), 고령김씨족보(갑술보) ●김장생(金莊生)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가진(可珍)이다.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증직(贈職 ) 받은 자숙(子肅)의 차남으로 세종 30년(1448년)에 태어났다. 연산군 때에 무과 에 급제한 후 진잠현감(鎭岑縣監), 하양현감(河陽縣監), 강령현감(康翎縣監)을 거쳐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끝으로 나에게는 부(富)와 귀(貴)는 부운(浮 雲)과 같다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쌍림면 안림리에 은거하면서 세상인연을 멀리하고 문을 굳게 닫아걸고 뜻을 구하는 ‘병적사세두문구지(屛跡 謝世杜門求志)’의 생활을 일생토록 하였다. 중종 19년(1524년) 6월 6일 향년 칠십칠수(七十七壽)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칠동(七洞) 선 고묘하(先考墓下) 유좌(酉坐)에 있다. 제주목사(濟州牧使)와 평안도병마절도사 (平安道兵馬節度使) 재임시 공을 세운 손자 수문(秀文)의귀(貴)로 가선대부(嘉 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겸(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증직(贈職)되었 다. 배위는 훈련참군(訓練參軍) 승주(承周)의 딸인 정부인(貞夫人) 가수노씨(嘉 樹魯氏)이다. 묘는 합폄(合窆)이고 증손 연(演)이 묘갈명(墓碣銘)을 찬(撰)하였 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고령김씨족보(갑술보) ●김재철(金載喆)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희천(希天)이다. 아버지 총(寵)과 어머니 달성서 씨(達城徐氏) 사이에서 영조 13년(1735년)에 태어났다. 순조 13년(1813년) 무 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략장군(宣略將軍) 행(行)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 果)를 지냈다. 몰년(沒年)은 미상(未詳)이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신기촌후(新基 村後) 신좌(辛坐)에 있다. 배위는 영인(令人) 청도김씨(淸道金氏)이다. 참고문헌 : 김해김씨 판서공 파보, 고령군지(1996년), 계유무과방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