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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1 - 도진리 상황을 알리고 만세 운동을 권유하였다. 이에 모두 만세 운동을 즉각 벌이기로 하고, 4월 8일 늦은 밤 11시 무렵 동민 50여 명과 함께 체포된 사람 의 석방과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박기 로를 비롯한 시위 중심인물 6명을 체포하였다. [결과] 우곡면 3·1 만세시위는 박재필·박영화·박차천 등이 구속되었고, 박채환은 징 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또 우곡면의 박기로는 징역 1년, 한이군·한용발·도말용 · 박용학·한광룡 등은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우곡면 3·1 만세시위는 고령 지역 만세 운동의 정점에 놓여 있는 고령의 대표적 만세 시위운동이었다. 그에 따라 시위의 피해 규모도 가장 컸다. [참고문헌] 『고령군지』 (고령군지편찬위원회, 1996) 『고령문화사대계』 1-역사편(고령군 대가야박물관·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 2008)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고령군 국채보상회(高靈郡國債報償會) -분 야 : 역사/근현대 -유 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 역 : 경상북도 고령군 -시 대 : 근대/개항기 -집 필 자 :권대웅 [정의] 1907년~1908년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의연금 모집 기관. [개설] 국채 보상 운동은 전 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아